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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영리 아카이빙(NPO-Archiving)

[모금캠페인 외전] 삼국지와 모금 1 - '한 사람도 감복시키지 못하면, 천하와 민심을 무슨 수로 얻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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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고전하면 역시 '삼국지'를 빼놓을 수 없다. 난세의 영웅, 지략의 책사, 용맹의 장수들. 실제 역사 삼국지와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의 차이는 둘째 치더라도 매력적인 스토리임은 틀림없다. 그래서 지금도 끊임없이 재창조되지 않을까 싶다. 

 

넷플릭스에서 알 수 없는 알고리즘으로 인해 삼국지 드라마를 접했다. 드라마를 극장판으로 편집해 만든 영화라 중간중간 생략된 부분도 많았다. 삼국지하면 대표적인 인물인 조조는 한 평생 유비의 의형제인 관우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고 싶어 했다. 2화에서 조조 밑에 있던 관우는 큰 형님인 유비가 살아 있단 소식을 듣고 바로 조조의 품을 떠났다. 적토마를 타고 떠나는 관우의 뒷모습을 보며 조조는 이렇게 한탄했다.

 

삼국지 극장판 장면

 

삼국지 극장판 장면

 

'한 사람도 감복시키지 못하면, 천하와 민심을 무슨 수로 얻겠는가.'

 

실제 그런 말을 했는지, 극 중 대사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이런 말 때문에 삼국지가 고전이라고 불린다고 생각한다.

 

모금도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의 마음을 얻어야지만 비전을 이룰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한 사람의 마음보다, 특정 페르소나 혹은 통계, 빅데이터에 의존하기도 한다. 

 

바로 내가 그랬다. 이과 성향을 가진 나는 숫자를 좋아했다. 성별, 연령에 따른 확률과 데이터를 분석하고 데이터를 토대로 전략을 짰다.  한 시즌의 결과가 나쁘면 어느 부분을 개선해야 하는지 근거를 직접 보고 싶었다. 그렇게 3년간 모인 데이터만 3천 명이 넘었다. 처음 보는 사람 / 5분이라는 짧은 시간 /이라는 거리모금의 특성상 한 사람 한 사람을 깊이 파고드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그 사람의 기부 가치관, 생활패턴, 소비습관, 돈에 대한 태도, 종교관, 직업관, 가족관계 이런 걸 5분 안에 어떻게 다 알겠는가. 소개팅처럼 다 물어볼 수도 없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통계에 의존할 수밖에.

 

그래서 양이 많을수록 유리했다. 30%대의 개발률로 일정 실적을 달성하려면, 최대한 많이 말을 걸고 설명해야 했다. 언제 다시 볼지 모르니. 누구한테는 온 마음을 얻고, 누구한테는 반 마음을 얻고, 누구한테는 마음을 얻지 못하고. 

 

마음의 반만 얻은 후원. 나에게 무엇이 부족했는가. 부족했던 걸까 아예 안 맞았던 걸까. 

 

이 고민은 삼국지를 보기 전, 모금 캠페인을 하면서 계속 가지고 있다. 고민의 답을 찾고자 책을 읽어보기도 하고, 외부교육도 받아보고,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정리도 해보고. 내 글에 직접 댓글을 달아주셨던 @nyimphe 님과 수용을 강조하신 국장님과의 면담까지. 답을 찾을 뻔하기도 했지만 내 맘에 탁! 와 닿는 답은 없었다.

 

그리고 3년 만에 찾아온 화두이자 명쾌한 답

'한 사람도 감복시키지 못하면, 천하와 민심을 무슨 수로 얻겠는가.'

 

조조도 집과 하인, 술과 고기, 심지어 적토마를 하사 했음에도 관우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 내가 아무리 멋진 디자인의 피켓과 책자, 완벽한 설명, 적절한 제스처를 썼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였다. 모든 사람의 마음을 얻기란 어려운 게 아니라 욕심이었다. 

 

"의사는 수술에서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르기에, '살릴 수 있다'라는 말은 보호자에게 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확답할 수 있는 건 오직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이 말 뿐이다. - 슬기로운 의사생활

 

본지 오래돼서 정확한 대사가 기억은 안 나지만 이런 의미의 대사가 있었다. 모금도 마찬가지 아닐까. 

 

"모금 현장에서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모릅니다. 날씨, 시민분의 옷차림, 그날의 컨디션, 갑작스러운 경조사 등. 그래서 '얼마만큼 모금해오겠습니다'라고 해서는 안된다. 모금가가 확답할 수 있는 건 오직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이 말 뿐이다."

 

오늘도 한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 할 뿐이다. 

 

표지 사진 출처 : https://pngtree.com/so/의로운-정신'>의로운-정신 png from pngtree.com

중간 사진 출처 : 삼국지 극장판 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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