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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에 이어서...

 

무작정 지하철을 타고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이란 곳을 찾아갔다. 원래라면 전시관 같은 곳은 예약을 하고 찾아가야 했지만, 그런 절차가 있는지도 모르고 그냥 찾아갔었고, 우연히 어떤 분이 먼저 '절차'대로 예약을 하고 직원의 설명을 들으면서 라운딩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난 원래 그냥 와도 되는 줄 알고, 같이 설명을 듣고 구경을 했다. 

 

사진은 찍지 못했지만, 내 기억상으로는 점자를 배울 수 있는 전문기구들과 그동안 복지관에서 제작했던 촉각그림들이 있던 것으로 기억했다. 라운딩이 끝나갈 무렵, 직원 분이 어떻게 오셨냐고 물어봤다. 난 3D 프린터로 촉각그림 만들고 싶은데, 복지관에서 이런 전시관과 작품이 있다길래 궁금해서 와봤다라고 답했다.

 

담당자가 원래는 예약을 하고 와야하는 장소라고 안내를 하면서, 나를 복지관의 3D 프린터 담당자에게 소개를 시켜주었다. 복지관 안에는 대형 프린터 1개, 소형 프린터 1개를 구비해두고, 이를 미술 전공으로 기억하고 있는 담당 선생님이 관리하고 계셨다. 내가 집에서 3D 프린터로 혼자서, 촉각그림을 만드는 것을 도전하고 있고, 관련해서 봉사활동도 하고 싶다고 하니, 시각장애인을 위해서 촉각그림을 만드는 임무(?)를 주셨다. 

 

복지관 내 3D 프린터 3개
대형 3D 프린터로 출력 밑그림

 

모델링을 전문적으로 하지 못하기에, 무료 모델링 파일을 다운 받을 수 있는 사이트를 통해서, 매미 유충 모델링을 다운받았다. 그리고 이 모델링을 출력해 보았는데, 몸통 부분은 무리 없이 출력이 되었지만, 가느다란 다리부분은 아무래도 표현에 한계가 있었다. (판에서 뜯다가 부러지기도 하는 등)

 

벌레 모형 주의

 

반으로 출력한 매미 출력물 결합반으로 출력한 매미 출력물 결합
대형 프린터로 출력한 매미 모델링대형 프린터로 출력한 매미 모델링
작은 프린터로 출력한 매미 모델링작은 프린터로 출력한 매미 모델링
작은 프린터로 출력한 매미 애벌레 모델링작은 프린터로 출력한 매미 모델링

 

그렇게, 수원에서 서울까지 기차와 빨간광역버스를 타며, 롯데리아 알바와 병행하여 봉사활동을 진행했었다. 큰 사이즈의 출력물도 출력해보기도 하는 등, 다양한 3D 프린팅을 시도해볼 수 있었으나, 아쉽게도 갑자기 취업 비스무리 한 걸(F2F캠페인 아웃소싱의 캠페이너)해버리는 바람에, 오래 지속하지 못하고 그만두고 말았다. 

 

그래도 당시에는 그쪽 취업에 관심이 있었던 터라, 점역사도 따볼까 하고 점자도 공부하기도 했었다. 

 

어찌 되었건, 나의 3D 프린팅 도전기는 갑작스런 직무 전환으로 인해 끝이 나게 되고, F2F캠페이너의 시작을 통해 본격적인 모금 커리어로 진입이 시작되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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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에 이어서...

 

저번 '고사관수도'에서 놓쳤던 부분을 보완하고자, 이번에는 김정희의 '세한도'와 김홍도의 작품들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세한도'는 '고사관수도'와 비슷한 방식으로 가되, 점자를 추가하는 방식이었고, 김홍도의 작품들은 모듈형식으로 만들어 보기로 했다.

 

모델링 프로그램에 띄운 세한도모델링 프로그램에 띄운 세한도와 점자

 

'세한도'는 '고산관수도'에 비해서 선 굵기가 가늘어서 손으로 더 느끼기 쉬울지, 어려울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 그리고 밑에 점자로 작가와 작품명을 추가로 만들었다. 정작 만들고 보니 마찬가지로 손끝으로 느끼기에는 선의 굵기가 너무 가늘고 크기도 작은 것이 한계였다. 

 

다른 스텝이었던 모듈형 방식은 김홍도 작품의 파트 부분을 따로 출력하고, 그 밑에 다른 질감의 재질을 덧붙여서, 선이 아닌 면을 인식하게 해보는 시도였다. 먼저 도전한 작품은 '밭갈이' 작품으로 

 

모델링 프로그램에 띄운 '밭갈이'

 

  • 쟁기잡는 사람
  • 소 2마리
  • 밭가는 사람 2명

쟁기 잡는 사람 출력물쟁기를 맨 소 2마리 출력물밭가는 사람 2명 출력물

이렇게 따로 나눠서 별도 출력을 진행했다. 거기서 다음 문제가 생겼는다. 선을 따라서 출력을 하긴 했는데, 그 선에 딱 맞는 천을 자르는 방법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3D 프린팅 출력물 위에, 종이를 대고 연필로 문대서 나온 흔적을 따라서 자르는 방법을 썼었다.

 

종이 위에 덧대서 나온 흔적 위에 덧대서 나온 흔적

 

다음에는 출력물 윗면을 유성매직으로 색을 칠한 후에, 복사기에 넣고 같은 사이즈로 종이 출력을 했다. 

유성매직을 덧칠한 출력물유성매직을 덧칠한 출력물

 

유성매직을 덧칠한 출력물을 복사한 이미지

 

그렇게 정사이즈 종이 출력물을 기초 도안으로 삼아, 집에서 안쓰는 삼베 주머니를 짤라서, 삼베옷 느낌을 내보았다. 이는 눈으로 볼 때도, 손으로 만질때도, 이전 버전보다 상대적으로는 훨씬 높은 퀄리티가 나올 듯 싶었다. 그러나 여전히 프린터 크기의 한계로 손가락이 들어가지 못한 부분(예를 들어 짚신 같은)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 한계였다. 

 

삼베옷을 입은 밭가는 사람삼베옷을 입은 밭가는 사람

다른 김홍도 작품의 등장인물들을 출력해보았으나, 이 방법은 아니다 싶어서 다시 다른 방법을 강구했다. 대신 질감을 부여한다는 방식은 촉각그림이 아닌 다른 작품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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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에 이어서

 

촉각그림 제작을 위해서 프린터를 샀으나, 정작 모델링을 할 줄 모르니, 무용지물이라서 수원역에 있는 컴퓨터 학원을 등록했다. 그리고 매탄권선역에서 수원역까지 자전거를 타고 학원에 왔다갔다 했다. 난 바로 모델링을 배우고 싶었으나, 커리큘럼상 포토샵을 먼저 배워야한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포토샵을 먼저 배울 수 밖에 없었다. 

 

포토샵을 어찌저찌 배우고 나서, 모델링 수업으로 넘어갔고, 거기서는 3D Max 프로그램을 활용해서 모델링을 배우는 커리큘럼이었다. 수강생 대부분이 건축 조감도를 만드는 쪽의 진로가 있었는지, 수업의 방향성이 대부분 그쪽으로 있었다.(설계도면 따라서 그리기, 빛 광원 넣기 등등) 나는 그쪽까지는 배울 필요가 없어서, 기초적인 조작법과 기능 등을 익히고, 가장 필요했던 '라인 따라 그리기'를 배우고 나서는 학원에 가지 않았다.(물론 집과 학원까지 자전거를 타고 왔다갔다 하는게 힘들기도 했다.)

 

기본 도형만 가지고 만들어본 모델링기본 도형만 가지고 만들어본 모델링
기본 도형만 가지고 만들어본 모델링

 

 

기본 도형만 가지고 만들어본 모델링
기본 도형만 가지고 만들어본 모델링

 

 

바로 집에서 3D Max 프로그램을 띄우고, '비너스의 탄생'을 만들기 위해, 비너스가 밟고 있는 조개 껍데기 라인을 따고 깨달았다. '내가 배운것으로는 평면을 튀어나오는 것만 가능'하다는 것을. 3D 피규어처럼 입체감 있는 부분을 만드는 것은 할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우선 전략을 바꿔서 평면 그림을 동전처럼 색이 있는 부분만 튀어나오게 하는 작품을 먼저 만들어보기로 했다.

 

그래서 처음 도전했던 작품이 전통 한국화인 '고사관수도'였다. 굳이 콕 찝어서 '고사관수도' 작품을 픽한 이유는, 군대에서 야간연등으로 한국사자격시험을 준비 할 때, 문제집에서 본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그냥 그 그림이 계속 기억에 남았었다.

 

고사관수도
고사관수도

 

세세한 라인을 따지 않아도 되었다보니 쉬이 초기 스케치를 딸 수 있었고, Extrude 기능을 이용해서 적당한 깊이감이 느껴지도록 튀어나오게 만들었다. 그렇게 첫 모델링 파일을 만들었으나, 이걸 3D 프린터로 출력하기 위해서는 한번 출력용 파일로 전환을 해줘야 했다. 3D 프린터는 한층한층 쌓아올리기 때문에, 입체감 있는 물체에 층을 내고, 지지대를 자동으로 만드는 슬라이스 과정을 거쳐야 한다. 처음에는 할 수 있는 방법을 몰라서 전문업체에 모델링 파일을 주고, 돈을 주고 출력까지 의뢰를 맡겼었다. 

 

모델링 배경으로 띄운 고사관수도모델링 화면

 

 

모델링 작품과 점자설명

 

 

업체와 한두번의 메일 소통 후에 받게 된 3D 프린팅 작품

 

메일로 받은 슬라이서 버전 모델링모델링 슬라이서

 

너무 흰색이라 원래 그림에서 묵으로 칠해진 부분을 유성매직으로 다시 검게 칠하니 훨씬 눈에 보기 편했다. 금액상 너무 크게 만들 수가 없어서 정작 손끝만으로 그림을 느끼는 것은 불가능.

 

최종 출력물최종 출력물

 

 

실제 작품과 비교
지금보니 진짜 옛날 컴

 

하지만 처음으로 내가 하고 싶은 무언가에 도전하고 어설프지만 그 결과물을 손에 쥐는 경험은 잊을 수가 없었다. 오히려 부족한 점을 해결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찾게 되고, 도전의식이 생긴다고 할까.

 

결국 처음 만든 고사관수도 작품은 옷장 위에 잘 올려두고, 다음 전략으로는 촉각그림 안에 질감을 넣어보기로 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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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4학년들은 수능을 끝낸 수험생처럼 엄청난 고민에 빠진다. 고3 때는 어느 대학의 어느 과에 지원할까라는 고민이라면, 대4는 더 심오하고 답이 없는 질문을 고민한다. 대학원이냐 취업이냐. 취업을 한다면 공무원이냐 기업이냐. 기업도 공기업이냐 사기업이냐. 공무원이면 무슨 직렬이냐 몇급을 준비하느냐. 그걸 하기 위해서는 난 무엇을 해야하나. 왜 난 그동안 이것도 못해놓고 있었느냐는 후회와 자책은 덤이다.

 

사회복지학과는 보통 졸업하고 전공을 살려서 취업을 할때는,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사회복지사 또는 사회복지공무원을 도전한다. 그게 아니라면 전공과 조금이라도 관련있는 공기업에 도전하거나, 전공과 관련없는 기업에 취업한다. 나 또한 그런 고민을 했었다. 명사형 직업을 선택해야한다면, 난 어떤 직업을 선택해야하는지 고민했다. 학기 중에는 학예사를 꿈꾸었고, 준학예사 시험에 떨어지고 나서는 사회복지사를 준비했다. 하지만 사회복지사를 준비해보니 사회복지사도 매우 다양한 분야가 있다. 

 

사회복지 전공 공부를 하다보면, 사회복지사의 역할을 배운다. 중개자, 중재자, 상담가 등 다양한 역할이 있다. 즉 사회복지사는 만능이라는 뜻이다. 사실 저런 역할은 직무에 따른 분류이고, 현실에서는 클라이언트에 따라서 종합사회복지관이냐, 아동/장애인/노인복지관이냐, 지역아동센터냐, 학교사회복지사이냐, 의료사회복지사이냐, 정신보건사회복지사냐로 나뉘고, 그 안에서 세부직무로 갔을때 사례관리, 프로그램개발, 자원개발, 인테이크 상담, 가족상담 등 다양한 직무와 역할을 맡게 된다.

 

그래서 내가 고민끝에 도전하고자한 분야는, 장애인+문화복지였다. 엔비디아 서포터즈, 국립민속박물관 봉사활동, 학예사 준비 등의 경험와 그 과정에서 고민을 거쳐 나온 결론이다. 하지만 나는 거기서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그래서 ‘시각장애’라는 부분을 더 해보고 싶었다. 엔비디아 서포터즈도 시각장애 아동, 국립민속박물관 봉사활동도 시각장애의 그림활동이었다. 장애인복지론에서 배운 ‘인클루시브 디자인’ 이라는 개념도 영향을 끼쳤다. 

 

세부 분야를 정했다고 해서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 분야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난 어떤 걸 해야할까 고민이 들었다. 그러다가 유럽여행 당시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의 기억이 떠올랐다. 우피치 미술관에는 우리에게도 유명한 ‘비너스의 탄생’그림이 걸려있다.

 

비너스의 탄생

 

그리고 그 옆에는 시각장애가 있는 관람객들도 관람할 수 있도록 촉각그림이 같이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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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피치미술관에 있는 비너스의 탄생 촉각그림
우피치미술관에 있는 촉각그림

 

난 지금껏 국내의 박물관, 미술관에 이러한 촉각그림이 있는 걸 본 기억이 없었다. ‘아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촉각그림을 만들어봐야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그냥 촉각그림이 아닌 당시 최신기술인 3D프린터로 만들어보기로. 당연히 3D프린터가 필요했고, 그림을 입체적으로 만들 모델링 기술도 필요했다. 그리고 그걸 만들어볼 시간도.

 

졸업을 1년 반정도 유예했다.(물론 그 사이에 졸업조건을 채우기 위한 시간도 있었다.) 그렇게 확보한 시간으로 3D맥스를 배우기 시작했다. 당시에 수원에서 살았는데, 자전거로 30분정도 거리에 있는 수원역에 있는 학원을 등록했다. 3D프린터도 미대를 다니던 친구와 절반씩 돈을 부담해서 초보자용 3D프린터를 구매했다.(대만 제조사의 xyz프린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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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복지’라는 첫 로드맵을 잡은 후에는 앞서 기록했던 것처럼, 자유주제 과제는 이 컨셉을 활용했다. 프로그램 개발과 평가(이후 ‘프개평’) 과목은 이 부분에서 가장 독보적으로 활개를 칠 수 있는 과목이었다. 사회복지학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개인과제’가 메인이기 때문이다. (사회복지학과는 조별과제 매우 많다.)

 

프개평 과목은 프로그램 개발과 평가에 관한 이론+직접 프로그램 개발+발표 3 파트로 나뉜다. 당연 직접 프로그램 개발 부분에 내 노력을 쏟아부었다. 중간고사 기간 이전까지 앞 부분을(평가 이전 부분까지), 이후 기말고사까지 최종 완성이 과제였다. 

 

대상자 : 특정 지역 위치한 장애인
장소 : 서울 성북구
자원 : 성북장애인복지관, 지자체, 성북구 내 박물관, 성북구 내 대학교 사학과
내용 : 성북구 내 장애인들의 문화체험 수준을 높이기 위한 사업

(자료를 찾을 수 없어서, 기억에 의존해서 쓰고 있다.)

 

당시 장애인복지관의 실습과 큐레이터 준비 경험을 토대로 필요성과 사업개요를 작성해나갔다. 아주 술술 잘 써내려졌다. 참고자료도 다양하게 넣었다. 중간고사는 이 과제를 평가하는 것으로 대체했다. 그리고 나는 여기서 유일하게 에이쁠을 받았다. 내 인생 유일 에이쁠이 아닌, 프개평 수업을 받는 학생 중 유일하게 에이쁠. 당시 교수님은 한명씩 불러서 이 점수가 나오는 이유를 설명해주셨다.

 

이유는 다양한 참고자료를 잘 넣었고 + 프로그램 진행 방식이 다른 학생들은 사회복지관을 기반으로 하는(사회복지관에서 할 법한) 사업인데 반해, 내가 만든 프로그램은 외부의 다양한 자원을 협의체처럼 운영하는 방식으로 기획했다는 참신함을 높게 평가해주셨다.

 

기말고사 과제는 ‘중간고사 과제 피드백 반영 + 사업 평가 지표 반영’이 포함된다. 그리고 내가 만든 프로그램을 다른 학생들 앞에서 발표 한다. ppt를 띄어놓고 한명씩 하는 발표가 아니라, 계획서를 그냥 출력해서 각자 벽에 붙인다. 그리고 각자 돌아다니면서 계획서를 보고 궁금한게 있으면 옆에 서 있는 당사자한테 물어보는 식이었다. 마치 건축학과나 미대의 졸업작품 전시회 스타일처럼.

 

그리고 기말고사까지 당당히 에이쁠 획득!

 

학교 성적증명서

 

가고 싶은 길(하고 싶은 일과는 조금 다르다. 하고 싶은 일은 직무와 관련되고, 가고 싶은 길은 분야(=섹터)와 직업관과 관련 된다.)을 찾아내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고, 내가 잘하는 것을 아는 것. 대학교에서 전혀 다른 분야의 복수전공과 외부 교육 등을 받으면서 위의 3가지를 확실히 찾는 좋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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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여러 정보를 얻고 혼자서 공부할 때, 카페에서 번개모임을 하는데 올 사람을 찾는 글이 보였다. 장소는 국립중앙박물과 메인 건물 앞이었다. 다른 참석자들을 위해서 자료도 하나씩 준비해오라고도했다.

 

편의점 알바 시간을 바꾸고, 자료를 정리해서 출력해서 약속 당일날, 박물관으로 향했다. 그런데 정작 참석자들의 연락처가 없었다 보니 누가 참석자인지, 정확히 어느 포인트에서 만나야 하는지 몰랐다. 그래서 무작정 기다렸다. 가을 날씨였지만 해가 지니 많이 쌀쌀했다. 해가 완전히 지고 나와, 어떤 어른 한분만이 계셨다. 

 

모이기로 한 참석자는 4명인데, 시간이 다 되도록 나와 그 어른 분만 장소에 있었다. 날씨는 점점 추워지고 폰 배터리도 떨어져 가던 중에 한 분이 허겁지겁 오면서 겨우 모임이 성사되었다.

 

내가 생각했던 스터디 같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냥 서로 간의 정보를 공유하고, 저녁으로 닭갈비를 먹었다. 모인 4명 중에 내가 제일 나이가 어렸다. 그리고 1분은 대학원생이셨고, 1분은 전혀 관련 없는 전공이셨다. 저녁으로 통째로 소비한 것 치고는 소득이 그렇게 높은 만남은 아니었지만, 비전공자가 전문 직업을 준비하면서 느끼는 고민을 많이 나눌 수 있었다.

 

이후로도 계속해서 공부를 지속했다. 사회복지전공 수업을 하면서 자격증 준비와 알바까지 하는 게 쉽진 않았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온라인 교육은 야간 편의점 알바를 가기 전에 조금씩 챙겨 들었고, 문화사(세계사)는 학교 쉬는 시간에 틈틈이 공부했다.

 

그렇게 공부를 하다가 광화문 근처에 위치한 박노수 미술관에서 봉사자를 구한다는 공고를 봤다. 아마 큐레이터 준비 카페였을 것이다. 규모는 크지 않았고, 박노수 작가가 소유하 더 집을 개조해서 미술관으로 운영 중이었다.  

 

https://www.jfac.or.kr/site/main/content/parkns01

 

박노수미술관

종로문화재단,박노수미술관 소개 소개 추진사업 전시중인 소장품 아트상품 오시는길 화가의 가옥, 예술품의 보고 종로구립 박노수미술관은 서울시 1종 등록미술관으로 박노수 화백의 기증작품

www.jfac.or.kr:443

 

 

주로 하는 일은 오픈 청소와 방문객이 오면 티켓 출력을 도와주고, 전시시간 동안 작품 근처에서 안내를 도와주는 역할이었다. 삐걱거리는 나무 바닥을 부직포밀대로 청소하고, 먼지를 닦는 간단한 청소를 끝내고 나면 관람객이 올 때까지 가만히 서서 고요함을 느꼈다. 정원을 보면서 전시 디자인을 혼자서 기획해보기도 했다. 정원에 놓인 석상을 보면서 동양의 석상과 서양의 석상을 비교해 보는 전시, 장원급제 합격자들을 답안지, 문과 관련된 전시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메모했다.

 

큐레이터 준비하면 썼던 아이디어 노트

 

아이디어 노트

당시 메모지의 일부


 

그렇게 시험일정이 다가왔다. 박물관학은 무난했었다. 영어는 역시나 어려웠다. 그때 당시에는 본격적으로 토익공부를 하기 전이기 때문에, 수능 영어가 전부였던 나에게는 어려웠다. 그리고 문제의 선택과목이었다. 한국사에는 2문제가 나왔는데, 첫 문제만 기억이 난다. 

 

[고려와 조선의 지방사회를 비교하시오.]

 

이렇게 대질문이 하나 나오고 그 밑에 소질문이 3개 정도 있었다. 그래도 이걸 서술형으로 아는 대로 다 써야 하고, 답안지 크기도 진짜 커서 어디서부터 써야 할지 막막했었다. 국사과목의 기억을 최대한 살려서 고려는 매향과 호족, 조선은 향교와 지방관을 키워드로 작성했다.

 

문화사는 다음 2문제가 나왔다.(정확한 명칭에서 오류가 있을 수 있다.)

[중국 청나라 강희제 시대를 서술하시오.]
[유럽의 30년 전쟁을 서술하시오]

 

이 문제를 받고 망했다는 생각을 했다. 중국사는 미처 거기까지 진도가 나가지 못했다. 유럽의 30년 전쟁은 100년 전쟁과 내용이 헷갈렸다. 그래서 각각 50점 배점이라고 생각해서 중국사는 포기하고 서양사만 집중해서 쓰기로 했다. 모든 내용을 다 손으로 써야 했기에, 손가락이 부러져라 작성했다.

 

시험을 무사히 마치고, 결과를 기다렸다. 결과발표가 12월인가 그랬던 거 같았다. 현재 성적표는 찾아볼 수 없지만(큐넷 홈페이지에서 최근 1년만 검색이 된다.) 문화사는 과락을 겨우 넘겼다. 그리고 합격 기준인 평균 60점에서 평균 1.5점이 부족했다. 

 

문화사 혹은 영어에서 좀 만 더 공부했더라면! 잠깐의 후회는 했지만, ITNJ의 성격상 바로 다음 계획을 짜야했다.  다음 시험을 준비할 것인가. 아니면 전공을 살려서 취업을 준비할 것인가. 아니면 대학원 코스를 밟을 것인가. 

 

1. 다음 시험을 준비한다. : 1년에 한 번 있는 시험이라 다시 1년을 준비해야 한다.
2. 전공을 살려 취업을 준비한다. : 인문계인 국사학과보다는 정경계열인 사회복지학과가 취업에 더 유리하니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준비해야 한다.
3. 대학원 코스를 알아본다. : 입학은 둘째 치고, 취업을 미루고 대학원 입학 비용을 걱정해야 한다.

 

여러 과정을 고민하지만 ‘이거다!’하는 선택이 없었다. 그렇게 대학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시간을 보낼 때 우연히 찾게 된 ‘국립민속박물관의 봉사활동 공고‘ 이 활동이 나의 진로선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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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0 - [사회복지에서 살아남기(Survivng the Social Sector)] - [Chapter 1. 사회복지학과에서 살아남기] 국사학과를 복수전공하다.

 

[Chapter 1. 사회복지학과에서 살아남기] 국사학과를 복수전공하다.

2024.04.03 - [사회복지에서 살아남기(Survivng the Social Sector)] - [Chapter 1. 사회복지학과에서 살아남기] 사회복지학과를 선택하다. [Chapter 1. 사회복지학과에서 살아남기] 사회복지학과를 선택하다.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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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서 말했다시피, 대학교 3학년이었던 그때, 큐레이터를 꿈꾸며 정보를 찾아 헤매던 중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문자도 교육 프로그램 봉사자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발견했다. 사회복지와 국사학이라는 두 분야를 접목시킬 수 있는 완벽한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신청했다. 어떤 과정을 거쳐 합격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결과는 합격이었다. 평일 수업을 마치고 국립민속박물관으로 향했다. 그곳에서의 경험은 나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해 주었다.

 

봉사자와 시각장애인 수강생들을 포함해 약 20명이 모였다. 수강생들은 박물관으로 직접 오지 않고, 안국역 3번 출구에서 모여 함께 이동했다. 그곳에서부터 봉사자로서의 임무가 시작되었다. 시각장애인 분들을 대할 때의 에티켓에 대해 배우고, 그들과 함께 걸으며 위험한 구간을 미리 알려주는 것이 내 역할이었다. 이 과정에서 장애인 분들의 문화생활 접근성에 대한 문제를 직접 체감하게 되었다. 비장애인에게는 단순한 길이지만, 장애가 있는 분들에게는 여러 어려움이 따르는 것을 목격했다.

 

이 경험은 나에게 사회복지와 국사학을 결합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문화복지라는 개념을 통해 장애인들의 문화적 접근성을 높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다. 이후 전공 선택과 과제에도 장애인복지와 유니버설 디자인에 집중하게 되었다. 이 길을 통해 나는 사회복지와 국사학이라는 두 분야를 어떻게 결합할 수 있을지에 대한 방향을 찾게 되었다. 문화복지라는 새로운 길을 모색하게 해 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안국역 3번 출구에서 시작된 우리의 여정은 단순한 동행이 아니었다. 나는 시각장애인 수강생들에게 내 양팔을 제공했고, 우리는 함께 박물관까지 걸어갔다. 이 과정에서 턱, 계단 등 위험한 부분을 알려주며, 그 구간에서는 한 템포 쉬어가며 사고 없이 이동했다. 이 경험을 통해 '아, 장애인 분들의 문화생활 접근성이 매우 불편하구나'를 직접 체감했다. 비장애인에게는 그저 아름다운 길일 수 있지만, 시각장애, 청각장애, 지체장애가 있는 분들에게는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길이었다. 이 경험은 나에게 문화복지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 주었다.

 

 프로그램 진행과 문자도

교육과 체험: 무사히 교육장에 도착한 후, 커리큘럼에 따라 문자도에 대한 이론 교육과 박물관 라운딩을 통한 체험을 진행했다.
문자도 만들기: 문자도는 당시의 한자를 사용하여 내가 원하는 의미를 담아 표현하는 작품이다. 이 과정에서 참가자들은 자신만의 문자도를 만들어보는 기회를 가졌다.

 

 

 

이 경험은 나에게 문화복지의 실천이 단순히 문화적 활동의 제공을 넘어서, 모든 사람이 문화생활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임을 깨닫게 해 주었다.

 

수강생들이 본인만의 문자도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나는 옆에서 보조 역할을 했다. 색상을 말하면 해당 색의 크레파스를 찾아주고, 원하는 위치를 손가락으로 찍어주는 것이었다. 시각장애인이 색이 있는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의아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장애는 후천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색에 대한 감각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를 통해 수강생들은 머릿속에서 상상한 그림을 색깔에 맞춰 그릴 수 있었다.

 

하지만 아르바이트 시간 변경으로 인해 봉사활동을 중도에 중단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경험은 장애인들의 문화복지, 즉 문화적 접근성을 높이는 일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 주었다. 박물관과 미술관은 시각 중심의 공간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다양한 장애 유형이 있는 사람들도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다.

 

미술작품 전시의 경우, 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작품 설명을 보기 어렵고, 바닥에 놓인 유물도 휠체어 사용자의 눈높이와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자폐성 장애나 발달장애가 있는 경우에도, 다양한 자극에 노출되어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다.

 

https://www.museum.go.kr/site/main/archive/post/article_19420

 

[국립중앙박물관] 발달장애아동과 함께 즐기는 공간 '2023 국립중앙박물관 어린이박물관 심포지

국립중앙박물관,발달장애아동과 함께 즐기는 공간 - 2023 국립중앙박물관 어린이박물관 심포지엄 개최 -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윤성용)은 발달장애아동을 위한 공간 조성과 교육을 주제로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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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는 학예사가 되어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한 전시 기획을 하겠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 이후 전공 선택과 과제를 할 때는 장애인복지와 유니버셜 디자인에 집중하여 공부하게 되었다.

 

박물관들은 물리적 접근성을 넘어 취약계층을 위한 프로그램과 시설을 제공하고 있으며, 유니버셜 디자인을 통해 모든 방문객을 수용하고 있다. 이는 박물관이 모든 방문객을 위한 문화시설로 진화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https://publicdesign.kr/archv/view/menu/892?thisPage=1&recordCnt=10&brdType=R&bbIdx=1000004895&idx=10000048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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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museumnews.kr/301column/

 

모두를 위한 박물관 – 박물관과 유니버설디자인 ②

고영준_서울과학기술대학교 디자인학과 교수 박물관의 유니버설디자인 적용사례 다양한 관람객들을 포용하기 위해 많은 박물관들이 노력을 하고 있다. 박물관시설에 대한 물리적 접근성을 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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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경험과 학습을 통해, 나는 문화공간이 모두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는 , 그리고 모든 사람이 문화생활을 누릴 있는 포용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것의 중요성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문화복지와 유니버셜 디자인은 이러한 포용적 문화공간 조성을 위한 핵심 요소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to be continued...

 

피렌체 미술관에 있는 촉각그림1피렌체 미술관에 있는 촉각그림2
유럽여행 당시 큰 충격을 받았던, 피렌체 미술관에 놓인 촉각 그림(직접 촬영), 시각장애인 관람객이 촉각 그림을 만지면서 체험할 수 있도록 유명한 작품들 앞에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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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적 생명, 그 이후의 사회적 생명

인간의 존재는 단순히 신체적인 생명을 넘어선, 깊고 복잡한 사회적 생명을 포함합니다. 우리는 병원에서 신체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지만, 그 이후의 삶, 즉 '사회적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돌봄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돌봄은 과거부터 상부상조, 품앗이 등의 문화와 간병인, 요양보호 등의 인력, 공공부조와 같은 사회적 안전망을 통해 이루어져 왔습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이러한 돌봄의 가치는 평가절하되어 왔으며, 대부분 약자들(여성, 비정규직, 미취업자 등)에게 돌봄의 책임이 전가되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돌봄의 자본주의

저자들은 현대 사회의 돌봄 체계가 국가, 지역사회, 가정의 순서가 아닌 역순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가족 중심의 돌봄이 우선시되다 보니, 가족 구성원이 지치고 나가떨어져야만 비로소 공적인 돌봄 체계가 작동하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또한, 현대인의 삶은 각자도생이 불가능한 상태로 전개되고 있으며, 이는 돌봄마저 자본주의 시스템 안으로 편입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저자들은 우리 모두가 돌봄을 받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돌봄을 제공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 어려움을 겪는다고 지적합니다.

 

노동력과 돌봄

이 책은 돌봄이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돌봄을 받는 사람과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 양쪽의 노동력과 수입이 중단되는 상황을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돌봄의 부재는 사회적 생명을 위협하며, 이는 궁극적으로 사회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 사회는 초고령화로 인해 국가의 공공부조에 대한 의존성이 높아지고 있으며, 이에 대한 충분한 논의와 대책 마련이 절실히 요구됩니다.

 

돌봄과 상호작용

<우리의 관계를 돌봄이라 부를 때>는 돌봄의 중요성과 그 복잡한 맥락을 다루며, 돌봄이 필요한 시간, 돌봄 동료와의 관계, 돌봄시설과 집, 돌봄의 방법 등 다양한 주제를 통해 돌봄에 대한 심도 있는 대담을 제공합니다. 이 책은 돌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넓히고, 돌봄이라는 주제에 대해 보다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줍니다. 저자들은 돌봄이 단지 개인이나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정치적 차원에서 중요한 의제임을 강조합니다. 이를 통해, 돌봄의 부담을 개인이 아닌 사회가 공동으로 짊어지고, 이를 지속 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저자들은 특히 상호의존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현재의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각자도생의 방식이 강조되지만, 인간은 본래 서로 의존하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건강하고 지속 가능하려면, 상호 의존적인 관계를 인정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돌봄의 패러다임을 모색해야 합니다.

 

공동체와 돌봄

이러한 관점에서, 저자들은 공동체 중심의 돌봄 시스템에 대해 고민합니다. 이는 지역사회가 중심이 되어 서로를 돌보는 시스템으로, 가족이나 개인에게만 돌봄의 책임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 전체가 함께 참여하여 돌봄을 공유하는 방식입니다. 이를 통해, 돌봄이 필요한 사람뿐만 아니라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도 지원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저자들은 기술의 발전이 돌봄에 미칠 수 있는 긍정적인 영향에 대해서도 논의합니다. 예를 들어, 원격 의료 서비스, 스마트 홈 기술, 로봇 등을 통해 돌봄의 접근성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돌봄의 질을 향상시키고, 돌봄의 부담을 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술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기술의 발전이 인간 중심의 돌봄을 보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정책만능주의와 돌봄

저자들은 돌봄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돌봄이 사회적 가치로 인정받고, 모든 사람이 돌봄을 받을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과 정책 제안을 제시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책은 돌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며, 어떠한 돌봄 시스템도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없고 완벽하지 않다고 인정합니다. 가족간병, 요양보험, 탈시설화 등 돌봄과 연관된 다양한 사회적 논의와 충돌이 있지만, 국가와 돌봄종사자, 돌봄 대상자 모두의 상황과 입장을 이해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다만 그 안에서 개인 혹은 공동체가 최선을 다해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긍정적인 사례들도 함께 공유하면서 나아가야할 방향도 알려줍니다.

 


추천대상자 : 만약 본인 혹은 주변인이 돌봄을 해야하는 상황에 처했을때,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는 분께 추천합니다.

 

 

2024.03.04 - [비영리 아카이빙(NPO-Archiving)] - [비영리 행사 후기] <우리의 관계를 돌봄이라 부를 때> 북토크 후기

 

[비영리 행사 후기] <우리의 관계를 돌봄이라 부를 때> 북토크 후기

가족돌봄아동, 영케어러라는 용어를 들어본적이 있나요? 그럼 옛날에 소년소녀가장이라는 표현은요? 우리가 흔히 부모님이나 가족이 아프면 자녀나 형제자매들이 돌봄을 행하면, 효자/효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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