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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에 이어서...

 

무작정 지하철을 타고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이란 곳을 찾아갔다. 원래라면 전시관 같은 곳은 예약을 하고 찾아가야 했지만, 그런 절차가 있는지도 모르고 그냥 찾아갔었고, 우연히 어떤 분이 먼저 '절차'대로 예약을 하고 직원의 설명을 들으면서 라운딩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난 원래 그냥 와도 되는 줄 알고, 같이 설명을 듣고 구경을 했다. 

 

사진은 찍지 못했지만, 내 기억상으로는 점자를 배울 수 있는 전문기구들과 그동안 복지관에서 제작했던 촉각그림들이 있던 것으로 기억했다. 라운딩이 끝나갈 무렵, 직원 분이 어떻게 오셨냐고 물어봤다. 난 3D 프린터로 촉각그림 만들고 싶은데, 복지관에서 이런 전시관과 작품이 있다길래 궁금해서 와봤다라고 답했다.

 

담당자가 원래는 예약을 하고 와야하는 장소라고 안내를 하면서, 나를 복지관의 3D 프린터 담당자에게 소개를 시켜주었다. 복지관 안에는 대형 프린터 1개, 소형 프린터 1개를 구비해두고, 이를 미술 전공으로 기억하고 있는 담당 선생님이 관리하고 계셨다. 내가 집에서 3D 프린터로 혼자서, 촉각그림을 만드는 것을 도전하고 있고, 관련해서 봉사활동도 하고 싶다고 하니, 시각장애인을 위해서 촉각그림을 만드는 임무(?)를 주셨다. 

 

복지관 내 3D 프린터 3개
대형 3D 프린터로 출력 밑그림

 

모델링을 전문적으로 하지 못하기에, 무료 모델링 파일을 다운 받을 수 있는 사이트를 통해서, 매미 유충 모델링을 다운받았다. 그리고 이 모델링을 출력해 보았는데, 몸통 부분은 무리 없이 출력이 되었지만, 가느다란 다리부분은 아무래도 표현에 한계가 있었다. (판에서 뜯다가 부러지기도 하는 등)

 

벌레 모형 주의

 

반으로 출력한 매미 출력물 결합반으로 출력한 매미 출력물 결합
대형 프린터로 출력한 매미 모델링대형 프린터로 출력한 매미 모델링
작은 프린터로 출력한 매미 모델링작은 프린터로 출력한 매미 모델링
작은 프린터로 출력한 매미 애벌레 모델링작은 프린터로 출력한 매미 모델링

 

그렇게, 수원에서 서울까지 기차와 빨간광역버스를 타며, 롯데리아 알바와 병행하여 봉사활동을 진행했었다. 큰 사이즈의 출력물도 출력해보기도 하는 등, 다양한 3D 프린팅을 시도해볼 수 있었으나, 아쉽게도 갑자기 취업 비스무리 한 걸(F2F캠페인 아웃소싱의 캠페이너)해버리는 바람에, 오래 지속하지 못하고 그만두고 말았다. 

 

그래도 당시에는 그쪽 취업에 관심이 있었던 터라, 점역사도 따볼까 하고 점자도 공부하기도 했었다. 

 

어찌 되었건, 나의 3D 프린팅 도전기는 갑작스런 직무 전환으로 인해 끝이 나게 되고, F2F캠페이너의 시작을 통해 본격적인 모금 커리어로 진입이 시작되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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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에 이어서

 

3D 프린터 촉각그림을 만드는 마지막 도전 방식을 서술하기에 앞서, 2번째 방법이었던 질감 부여 방식은 다른 작품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었다. 지금은 정확히 기능 명칭이 기억나지 않지만, 3D Max 기능 중에 Extrude처럼 수직으로 튀어나오는 게 아니라 모래쌓는 것처럼 올라오게 만드는 기능이 있다. 찰흙덩이 위에 찰흙을 조금씩 덧붙이는 것 같은 기능이다. 

 

수묵화의 산을 따라서 만든 모델링
민화에 나오는 여인의 뒷모습 모델링민화에 나오는 여인의 옆모습 모델링

 

Extrude가 선을 따는데 적확한 기능이라면, 그 기능은 옷이나 신체 같이 굴곡이 있는 부분을 표현하기에는 이 기능이 더 유용했던 기능이라고 판단했다. 튀어나오게 하는 범위와 크기를 자유롭게 그림 그리듯 표현할 수 있는 장점도 있었다. 물론 너무 과도한 굴곡 표현으로 그리드가 많아지면, 당시 내 똥컴으로는 못버티고 멈추거나 튕기기도 해서, 생전 처음으로 램을 추가로 사서 끼우기도 했다.(4기가에서 8기가로 업그레이드) 다행히 램 업그레이드로 컴이 어느정도 버텨주자, 우선 그림에 나오는 여성 등장인물 하나를, 그 기능을 사용해서 모델링하고 출력까지 해보았다.

 

출력에 실패한 프린팅

 

처음에는 무슨 수건처럼 면이 다채워지지도 않게 출력되기도 하는 등 실패를 좀 했었다. 아마 위로 굴곡을 올리면서, 등고선 같은 경계면이 제대로 인식이 안되었거나, 내가 가지고 있던 3D 프린터가 싸구려이거나, 그랬을 것이다.(당시 내가 산 프린터는 초보자용)

작은 사이즈 출력에 성공한 모델링

 

그러다 어찌어찌 귀여운 사이즈로 나름 만족스러운 출력물을 얻을 수 있었다.(다음 편에서 쓰겠지만, 시각장애인복지관에 있던 3D 프린터로 출력한 버전이다) 그래서 다른 모델로도 출력을 해보기도 했다.(나루토 관련 이미지 검색해서 그나마 귀여운 걸로다가)

나루토 SD버전 모델링 출력물

 

 

그래서 이렇게 혼자서 고군분투하며 3D 프린팅을 연습하고 있을때, 우연히 인터넷 뉴스를 통해 한 기사를 접하게 된다.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3D 프린터를 활용한 촉각그림, 촉각교구재를 만들고 있고, 관련 전시관이 있다는 것을. 지금에서야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무작정 찾아갔다. 예약도 없이...

 

to be continu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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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에 이어서...

 

저번 '고사관수도'에서 놓쳤던 부분을 보완하고자, 이번에는 김정희의 '세한도'와 김홍도의 작품들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세한도'는 '고사관수도'와 비슷한 방식으로 가되, 점자를 추가하는 방식이었고, 김홍도의 작품들은 모듈형식으로 만들어 보기로 했다.

 

모델링 프로그램에 띄운 세한도모델링 프로그램에 띄운 세한도와 점자

 

'세한도'는 '고산관수도'에 비해서 선 굵기가 가늘어서 손으로 더 느끼기 쉬울지, 어려울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 그리고 밑에 점자로 작가와 작품명을 추가로 만들었다. 정작 만들고 보니 마찬가지로 손끝으로 느끼기에는 선의 굵기가 너무 가늘고 크기도 작은 것이 한계였다. 

 

다른 스텝이었던 모듈형 방식은 김홍도 작품의 파트 부분을 따로 출력하고, 그 밑에 다른 질감의 재질을 덧붙여서, 선이 아닌 면을 인식하게 해보는 시도였다. 먼저 도전한 작품은 '밭갈이' 작품으로 

 

모델링 프로그램에 띄운 '밭갈이'

 

  • 쟁기잡는 사람
  • 소 2마리
  • 밭가는 사람 2명

쟁기 잡는 사람 출력물쟁기를 맨 소 2마리 출력물밭가는 사람 2명 출력물

이렇게 따로 나눠서 별도 출력을 진행했다. 거기서 다음 문제가 생겼는다. 선을 따라서 출력을 하긴 했는데, 그 선에 딱 맞는 천을 자르는 방법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3D 프린팅 출력물 위에, 종이를 대고 연필로 문대서 나온 흔적을 따라서 자르는 방법을 썼었다.

 

종이 위에 덧대서 나온 흔적 위에 덧대서 나온 흔적

 

다음에는 출력물 윗면을 유성매직으로 색을 칠한 후에, 복사기에 넣고 같은 사이즈로 종이 출력을 했다. 

유성매직을 덧칠한 출력물유성매직을 덧칠한 출력물

 

유성매직을 덧칠한 출력물을 복사한 이미지

 

그렇게 정사이즈 종이 출력물을 기초 도안으로 삼아, 집에서 안쓰는 삼베 주머니를 짤라서, 삼베옷 느낌을 내보았다. 이는 눈으로 볼 때도, 손으로 만질때도, 이전 버전보다 상대적으로는 훨씬 높은 퀄리티가 나올 듯 싶었다. 그러나 여전히 프린터 크기의 한계로 손가락이 들어가지 못한 부분(예를 들어 짚신 같은)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 한계였다. 

 

삼베옷을 입은 밭가는 사람삼베옷을 입은 밭가는 사람

다른 김홍도 작품의 등장인물들을 출력해보았으나, 이 방법은 아니다 싶어서 다시 다른 방법을 강구했다. 대신 질감을 부여한다는 방식은 촉각그림이 아닌 다른 작품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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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에 이어서

 

촉각그림 제작을 위해서 프린터를 샀으나, 정작 모델링을 할 줄 모르니, 무용지물이라서 수원역에 있는 컴퓨터 학원을 등록했다. 그리고 매탄권선역에서 수원역까지 자전거를 타고 학원에 왔다갔다 했다. 난 바로 모델링을 배우고 싶었으나, 커리큘럼상 포토샵을 먼저 배워야한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포토샵을 먼저 배울 수 밖에 없었다. 

 

포토샵을 어찌저찌 배우고 나서, 모델링 수업으로 넘어갔고, 거기서는 3D Max 프로그램을 활용해서 모델링을 배우는 커리큘럼이었다. 수강생 대부분이 건축 조감도를 만드는 쪽의 진로가 있었는지, 수업의 방향성이 대부분 그쪽으로 있었다.(설계도면 따라서 그리기, 빛 광원 넣기 등등) 나는 그쪽까지는 배울 필요가 없어서, 기초적인 조작법과 기능 등을 익히고, 가장 필요했던 '라인 따라 그리기'를 배우고 나서는 학원에 가지 않았다.(물론 집과 학원까지 자전거를 타고 왔다갔다 하는게 힘들기도 했다.)

 

기본 도형만 가지고 만들어본 모델링기본 도형만 가지고 만들어본 모델링
기본 도형만 가지고 만들어본 모델링

 

 

기본 도형만 가지고 만들어본 모델링
기본 도형만 가지고 만들어본 모델링

 

 

바로 집에서 3D Max 프로그램을 띄우고, '비너스의 탄생'을 만들기 위해, 비너스가 밟고 있는 조개 껍데기 라인을 따고 깨달았다. '내가 배운것으로는 평면을 튀어나오는 것만 가능'하다는 것을. 3D 피규어처럼 입체감 있는 부분을 만드는 것은 할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우선 전략을 바꿔서 평면 그림을 동전처럼 색이 있는 부분만 튀어나오게 하는 작품을 먼저 만들어보기로 했다.

 

그래서 처음 도전했던 작품이 전통 한국화인 '고사관수도'였다. 굳이 콕 찝어서 '고사관수도' 작품을 픽한 이유는, 군대에서 야간연등으로 한국사자격시험을 준비 할 때, 문제집에서 본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그냥 그 그림이 계속 기억에 남았었다.

 

고사관수도
고사관수도

 

세세한 라인을 따지 않아도 되었다보니 쉬이 초기 스케치를 딸 수 있었고, Extrude 기능을 이용해서 적당한 깊이감이 느껴지도록 튀어나오게 만들었다. 그렇게 첫 모델링 파일을 만들었으나, 이걸 3D 프린터로 출력하기 위해서는 한번 출력용 파일로 전환을 해줘야 했다. 3D 프린터는 한층한층 쌓아올리기 때문에, 입체감 있는 물체에 층을 내고, 지지대를 자동으로 만드는 슬라이스 과정을 거쳐야 한다. 처음에는 할 수 있는 방법을 몰라서 전문업체에 모델링 파일을 주고, 돈을 주고 출력까지 의뢰를 맡겼었다. 

 

모델링 배경으로 띄운 고사관수도모델링 화면

 

 

모델링 작품과 점자설명

 

 

업체와 한두번의 메일 소통 후에 받게 된 3D 프린팅 작품

 

메일로 받은 슬라이서 버전 모델링모델링 슬라이서

 

너무 흰색이라 원래 그림에서 묵으로 칠해진 부분을 유성매직으로 다시 검게 칠하니 훨씬 눈에 보기 편했다. 금액상 너무 크게 만들 수가 없어서 정작 손끝만으로 그림을 느끼는 것은 불가능.

 

최종 출력물최종 출력물

 

 

실제 작품과 비교
지금보니 진짜 옛날 컴

 

하지만 처음으로 내가 하고 싶은 무언가에 도전하고 어설프지만 그 결과물을 손에 쥐는 경험은 잊을 수가 없었다. 오히려 부족한 점을 해결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찾게 되고, 도전의식이 생긴다고 할까.

 

결국 처음 만든 고사관수도 작품은 옷장 위에 잘 올려두고, 다음 전략으로는 촉각그림 안에 질감을 넣어보기로 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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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4학년들은 수능을 끝낸 수험생처럼 엄청난 고민에 빠진다. 고3 때는 어느 대학의 어느 과에 지원할까라는 고민이라면, 대4는 더 심오하고 답이 없는 질문을 고민한다. 대학원이냐 취업이냐. 취업을 한다면 공무원이냐 기업이냐. 기업도 공기업이냐 사기업이냐. 공무원이면 무슨 직렬이냐 몇급을 준비하느냐. 그걸 하기 위해서는 난 무엇을 해야하나. 왜 난 그동안 이것도 못해놓고 있었느냐는 후회와 자책은 덤이다.

 

사회복지학과는 보통 졸업하고 전공을 살려서 취업을 할때는,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사회복지사 또는 사회복지공무원을 도전한다. 그게 아니라면 전공과 조금이라도 관련있는 공기업에 도전하거나, 전공과 관련없는 기업에 취업한다. 나 또한 그런 고민을 했었다. 명사형 직업을 선택해야한다면, 난 어떤 직업을 선택해야하는지 고민했다. 학기 중에는 학예사를 꿈꾸었고, 준학예사 시험에 떨어지고 나서는 사회복지사를 준비했다. 하지만 사회복지사를 준비해보니 사회복지사도 매우 다양한 분야가 있다. 

 

사회복지 전공 공부를 하다보면, 사회복지사의 역할을 배운다. 중개자, 중재자, 상담가 등 다양한 역할이 있다. 즉 사회복지사는 만능이라는 뜻이다. 사실 저런 역할은 직무에 따른 분류이고, 현실에서는 클라이언트에 따라서 종합사회복지관이냐, 아동/장애인/노인복지관이냐, 지역아동센터냐, 학교사회복지사이냐, 의료사회복지사이냐, 정신보건사회복지사냐로 나뉘고, 그 안에서 세부직무로 갔을때 사례관리, 프로그램개발, 자원개발, 인테이크 상담, 가족상담 등 다양한 직무와 역할을 맡게 된다.

 

그래서 내가 고민끝에 도전하고자한 분야는, 장애인+문화복지였다. 엔비디아 서포터즈, 국립민속박물관 봉사활동, 학예사 준비 등의 경험와 그 과정에서 고민을 거쳐 나온 결론이다. 하지만 나는 거기서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그래서 ‘시각장애’라는 부분을 더 해보고 싶었다. 엔비디아 서포터즈도 시각장애 아동, 국립민속박물관 봉사활동도 시각장애의 그림활동이었다. 장애인복지론에서 배운 ‘인클루시브 디자인’ 이라는 개념도 영향을 끼쳤다. 

 

세부 분야를 정했다고 해서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 분야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난 어떤 걸 해야할까 고민이 들었다. 그러다가 유럽여행 당시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의 기억이 떠올랐다. 우피치 미술관에는 우리에게도 유명한 ‘비너스의 탄생’그림이 걸려있다.

 

비너스의 탄생

 

그리고 그 옆에는 시각장애가 있는 관람객들도 관람할 수 있도록 촉각그림이 같이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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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피치미술관에 있는 비너스의 탄생 촉각그림
우피치미술관에 있는 촉각그림

 

난 지금껏 국내의 박물관, 미술관에 이러한 촉각그림이 있는 걸 본 기억이 없었다. ‘아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촉각그림을 만들어봐야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그냥 촉각그림이 아닌 당시 최신기술인 3D프린터로 만들어보기로. 당연히 3D프린터가 필요했고, 그림을 입체적으로 만들 모델링 기술도 필요했다. 그리고 그걸 만들어볼 시간도.

 

졸업을 1년 반정도 유예했다.(물론 그 사이에 졸업조건을 채우기 위한 시간도 있었다.) 그렇게 확보한 시간으로 3D맥스를 배우기 시작했다. 당시에 수원에서 살았는데, 자전거로 30분정도 거리에 있는 수원역에 있는 학원을 등록했다. 3D프린터도 미대를 다니던 친구와 절반씩 돈을 부담해서 초보자용 3D프린터를 구매했다.(대만 제조사의 xyz프린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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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과정만큼 중요한 과정이 사진촬영 커리큘럼이었다. 이전 글과 마찬가지로 약간이라도 보이는 학생들도 있으므로 혼자서 사진촬영도 가능하다. 물론 옆에는 서포터즈들이 보조하지만. 카메라 조작법 교육을 시작으로 친구 사진, 학교 사진, 풍경 사진으로 점점 확대되어갔다. 여기서 나도 반셔터라는 걸 처음 알았다.

디카로 사진을 찍는 시각장애 학생들

 

손으로 재료와 겉모습을 만질 수 있는 공작, 종이 위를 손가락으로 따라갈 수 있는 회화와는 다르게, 사진을 손만으로 무언가 하기 많이 어려운 작업이다. 우선 카메라의 접안 부분에 학생과 서포터즈가 동시에 눈을 대고 찍을 수 없다. 그래서 무엇을 대상으로 잡고, 초점을 제대로 잡는지 알기 어렵다. 디지털카메라의 화면을 보거나, 촬영하고 난 사진을 같이 보는 식이었다. 작은 화면이다 보니 손가락으로

 

’ 이 부분에 초점이 나갔고, 대상으로 하는 책상은 여기에 있어.‘

 

작은 화면을 손가락으로 같이 찍어주더라도 그건 도화지와 달리 매번 구도는 달라졌다. 그럼에도 학생들은 사진촬영에 매우 즐거워했다. 친구들을 모델로 사진을 찍을 때도 단순한 증명사진이 아니라, 가발을 쓰기도 했다. 학교를 주제로 사진을 찍을 때는 도자기 가마가 있는 학교 지하부터 곳곳을 돌아다녔다. 풍경사진을 찍을 때는 학교 인근의 산에 오르면서 산의 풍경을 찍었다. 

 

디카로 사진을 찍는 시각장애학생들

사진을 흔히 ’ 찰나의 예술‘이라고 한다. 일상의 흔히 지나가는 것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진짜 찰나의 순간을 고정시킨다. 같은 장면과 모델을 보고 누군가는 ’ 햇빛을 가득 받은 모습을‘, 또 누군가는 ’ 석양빛을 받으며 그늘진 모습을‘ 찍고 싶을 수 있다. 필름카메라의 느낌을 좋아하는 사람, 전문가의 후보정을 거친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 등 취향은 다양하다. 이처럼 사진에는 정답이 없다. 흔들리고, 초점이 나간 사진마저도 사진작가나 보는 사람에게는 울림이 있을 수 있다. 

 

엔비디아 서포터즈를 하면서 만났던 맹학교 학생들의 사진과 미술작품에도 정답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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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 서포터즈 활동이 끝날 때쯤, 학생들의 작품을 모아 전시회를 열었다.

 

시각장애학생 미술작품 전시회 배너

 

시각장애 학생의 미술작품들

 

시각장애 학생의 미술작품들
시각장애 학생의 미술작품들

 

전시회는 문맥을 만드는 활동이다. 서로 관련이 없는(혹은 부족한) 작품과 콘텐츠를 하나의 주제로 묶어서, 하나의 공간에 전시한다. 소설의 기승전결을 따라 읽도록 작가가 의도하는 것처럼, 큐레이터는 관람객의 동선, 작품의 배치 등을 통해 하나의 이야기를 만든다. 맹학교 학생들의 전시회도 모르는 사람이 보면 실패한, 망친 작품이겠지만 전시장 안에서 만큼은 빠져서는 안 되는 중요한 요소이다. 맹학교의 아이들도 작품을 기획하고, 만들고, 전시하면서 스스로를 중요한 존재임을 인식한다. 

 

그걸 보는 나도 인간에게, 아이들에게,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문화활동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기존의 문화와 관련된 지원은 ‘문화 바우처’, ‘티켓 할인’ 등 ‘문화 소비’에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이는 반쪽만 지원하는 사업이고 문화사업의 반대편에 있는 ‘문화 생산’에 대한 지원도 더 많아져야 한다고 느꼈다. 

 

내가 만든 이론이지만 문화 산업은 ‘문화 생산자’와 ‘문화 소비자’의 파이에 따라 결정되고, 소외되고 있는 장애인들을 ‘문화 소비’ 시장에 참여하게만 하는 복지 제도에서 벗어나, ‘문화 생산‘시장에도 참여할 수 있는 제도를 확충하여 ’ 문화 산업‘ 시장 전체가 커질 수 있는 선순환을 만든다. 즉 ‘문화생산자’의 파이에도 장애인들이 쉽게 들어온다면, 대한민국의 문화산업 전체가 커질 수 있을 것이다. 

 

엔비디아 비주얼 서포터스가 나에게 남긴 것은 ‘처음으로 끝까지 완주한 대외활동’과 ‘남은 대학생활 동안 나는 어떤 사회복지를 해야 하는가.’라는 고민을 끝낸 아주 중요한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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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포터즈의 메일 활동 장소는 서울에 위치한 맹학교였다. 맹학교에서 진행하는 미술수업의 보조교사로 활동했다. 맹학교의 특징상 회화보다는 촉각을 필요로 하는 만들기 수업도 꽤 있었고, 특히나 사진 수업도 있었다.

 

그리고 많은 비장애인, 그리고 다른 유형의 장애인들도 잘 모르는 분들이 많다. 

 

‘어떻게 앞이 안보이는데 미술을 할 수 있느냐.’


흔히 생각할 때 시각장애인은 완전히 앞을 못본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아무래도 대중매체에서 시각장애인을 그렇게 표현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도 있으리라.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앞을 아예 보지 못함’ 유형은 전맹이라고 해서 시각장애 스펙트럼의 일부분이다. 희미하게 형체정도는 구분할 수 있는 장애스펙트럼도 있다.

 

장애등급상    

1급 : 좋은 눈의 시력이 0.02이하인 사람
2급 : 좋은 눈의 시력이 0.04이하인 사람
3급 1호 : 좋은 눈의 시력이 0.06이하인 사람
3급 2호 : 두 눈의 시야가 각각 모든 방향에서 5도 이하로 남은 사람
4급 1호 : 좋은 눈의 시력이 0.1이하인 사람

 

이렇게 시각장애로 판정된다.

 

두번째 오해는 ‘색을 인식할 수 있는가’

 

첫번째 오해로 인해 자연스레 드는 추가 의문이다. 앞서 말했다시피 희미하게나마 보이는 장애수준도 있을 뿐더러, 선천 보다는 후천적으로 시각장애 판정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앞이 보이던 시절이 있기 때문에 색에 대한 인지는 충분히 가능하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와서, 맹학교 미술수업에는 초등학생의 학생들에게 1대1로 매칭이 되어 수업을 보조했다. 학생들의 수업 열정은 매우 높았다. 미술 선생님의 질문에도 너도나도 손을 들고 대답했고, 자신이 만든 작품을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사진 촬영은 학교 내와 학교 인근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촬영을 했다. 서포터즈는 이동을 보조하교, 촬영된 사진을 말로 묘사하는 것만 도와줄 뿐, 구도를 잡고 촬영하는 것은 온전히 학생들의 몫이었다.

디지털카메라를 만지는 시각장애아동
카메라 액정화면을 가리키면서 원하는 구도대로 찍혔는지 확인해준다.

 

운동장에서 사진을 찍는 시각장애아동과 서포터즈
열정적인 사진작가와 모델들

서포터즈 활동은 약 1년간 진행되었는데, 내가 직접 수업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해볼 수 있는 기회도 가졌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주제는 ‘탈 만들기’. 전통탈을 직접 만지고 써보면서, 다양한 탈의 역할을 이해하고 나만의 탈을 만들어 보고자 했다.

 

그래서 직접 인사동에 가서 전통탈을 하나 샀다. 

 

노장탈 실물

 

흔히 생각하는 안동 하회탈 대신에, 어떤 탈이 괜찮을까 하다 눈에 띈 탈이 봉산탈춤에서 승려 역할의 ‘노장탈’이었다. 흑과 백으로 색 대비가 크고, 다른 장식 없이 이목구비가 뚜렷했다. (그리고 나중에 이 탈은 유럽여행 당시 베네치아의 가면 대신으로도 사용했다.) 학생들은 탈을 직접 만져보고 써보면서 즐거워했다. 서포터즈들은 옆에서 손으로 지나가는 부분을 말로 묘사해주었다. 

 

‘입술이 붉은색이고, 턱 끝까지 찢어져있네.‘
’지금 만지는 곳은 눈썹이 있는 부분인데, 검정, 빨강, 흰색이 번갈아 칠해져있어‘
’얼굴 표면에는 하얀색 점이 많이 박혀있어‘

 

여러번 걸쳐 탈을 만져보고, 그 후에는 학생들이 직접 탈을 만들어보았다.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빈 종이탈을 하나씩 나누어주고, 원하는대로 꾸미게 했다.

 

탈과 대본
직접 인사동에 가서 사온 탈과 대본

 

시각장애아동들이 만드는 종이탈시각장애아동들이 만드는 종이탈아이들이 직접 만든 종이탈
 
 
아이들이 만든 작품들

학생들은 종이탈을 만져가면서 눈 주변에는 이 색깔, 볼에는 이 색깔을 칠하겠다며 구체적으로 색을 말했다. 그러면 옆에 있는 서포터즈들이 색칠도구(크레파스, 색연필, 싸인펜 등)에서 알맞는 색을 찾아서 건네 주었다. 역시나 아이들이 즐거워하면서 종이탈을 꾸미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벅차올랐다. 실습 때도 느꼈던 그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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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활때 그리 많은 대외활동을 하지 못했다. 배드민턴 동아리 활동도 2년정도 했고, 국립민속박물관 봉사활동도 절반정도 밖에 못했다. 그럼에도 내가 유일하게 장기간이면서 끝까지 완료한 대외활동이 엔비디아 비주얼서포터즈였다.

 

이 활동도 큐레이터 카페에서 공고를 확인했다. 그때는 시각장애인(아동)의 문화활동이라니. 구체적으로는 맹학교 내의 미술보조교사 활동. 이건 내가 무조건해야하는 활동이었다. 그리고 엔비디아라는 국제적인 기업의 대외활동이라니. 나도 이력서에 한 줄은 추가해야하지 않겠는가.

 

엔비디아 비주얼서포터즈 모집 포스터

 

역시 대기업의 대외활동이다보니 경쟁률이 만만치 않았다. 면접까지 있었다. 다대다면접이었고 엔비디아 코리아 서울 사무실에서 진행되었다. 봉은사역의 무역타워안에는 그 면접 때문에 처음 들어가봤다. 안에 들어가보니 면접을 보기 위한 대학생들이 많았다. 내 이름이 적힌 명찰을 가슴팍에 꽂고 면접을 기다렸다. 이윽고 면접장 안으로 들어갔다. 나를 포함해서 4명이 면접조였다. 자기소개를 시작으로 왜 이 대외활동에 지원하였는지 같은 질문이 이어졌다.

 

면접 당시의 기억은 거의 나지 않는다.(시간이 얼마나 많이 지났는데.) 어찌어찌 면접을 끝내고 결과를 기다렸다. 그리고 당당히 합격! 합격자들과 함께 1박2일간의 워크샵이 기다리고 있었다. 장소는 바닷가 근처 어딘가. 숙소도 근사하고 식사도 뷔페였다. 역시 대기업이다며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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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합격자의 수는 약 20명정도였는데, 남자가 나를 포함해 딱 2명 뿐이었다. 사회복지학과 성비가 1대1이었는데도, 이렇게 여자가 많은 무리는 처음이었다. 당시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 강했던 터라, 여자 합격자들끼리 친해지고 할때도 나+다른 남자 합격자는 초반에 어울리기 힘들었다. 말 그대로 ‘기가 빨렸다.’

 

워크샵 프로그램 중에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안경 만들기‘도 있었다. 진짜 보이는 안경을 만드는 건 아니고, 각종 재료를 활용해서 상상해서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진 촬영. 각자 물감을 손바닥에 묻혀서 현수막에 찍고, 그것을 들고 단체 사진을 촬영했다. 

 

이렇게 간단한 워크샵을 마치고, 3월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https://litt.ly/locoma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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