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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과정만큼 중요한 과정이 사진촬영 커리큘럼이었다. 이전 글과 마찬가지로 약간이라도 보이는 학생들도 있으므로 혼자서 사진촬영도 가능하다. 물론 옆에는 서포터즈들이 보조하지만. 카메라 조작법 교육을 시작으로 친구 사진, 학교 사진, 풍경 사진으로 점점 확대되어갔다. 여기서 나도 반셔터라는 걸 처음 알았다.

디카로 사진을 찍는 시각장애 학생들

 

손으로 재료와 겉모습을 만질 수 있는 공작, 종이 위를 손가락으로 따라갈 수 있는 회화와는 다르게, 사진을 손만으로 무언가 하기 많이 어려운 작업이다. 우선 카메라의 접안 부분에 학생과 서포터즈가 동시에 눈을 대고 찍을 수 없다. 그래서 무엇을 대상으로 잡고, 초점을 제대로 잡는지 알기 어렵다. 디지털카메라의 화면을 보거나, 촬영하고 난 사진을 같이 보는 식이었다. 작은 화면이다 보니 손가락으로

 

’ 이 부분에 초점이 나갔고, 대상으로 하는 책상은 여기에 있어.‘

 

작은 화면을 손가락으로 같이 찍어주더라도 그건 도화지와 달리 매번 구도는 달라졌다. 그럼에도 학생들은 사진촬영에 매우 즐거워했다. 친구들을 모델로 사진을 찍을 때도 단순한 증명사진이 아니라, 가발을 쓰기도 했다. 학교를 주제로 사진을 찍을 때는 도자기 가마가 있는 학교 지하부터 곳곳을 돌아다녔다. 풍경사진을 찍을 때는 학교 인근의 산에 오르면서 산의 풍경을 찍었다. 

 

디카로 사진을 찍는 시각장애학생들

사진을 흔히 ’ 찰나의 예술‘이라고 한다. 일상의 흔히 지나가는 것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진짜 찰나의 순간을 고정시킨다. 같은 장면과 모델을 보고 누군가는 ’ 햇빛을 가득 받은 모습을‘, 또 누군가는 ’ 석양빛을 받으며 그늘진 모습을‘ 찍고 싶을 수 있다. 필름카메라의 느낌을 좋아하는 사람, 전문가의 후보정을 거친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 등 취향은 다양하다. 이처럼 사진에는 정답이 없다. 흔들리고, 초점이 나간 사진마저도 사진작가나 보는 사람에게는 울림이 있을 수 있다. 

 

엔비디아 서포터즈를 하면서 만났던 맹학교 학생들의 사진과 미술작품에도 정답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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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 서포터즈 활동이 끝날 때쯤, 학생들의 작품을 모아 전시회를 열었다.

 

시각장애학생 미술작품 전시회 배너

 

시각장애 학생의 미술작품들

 

시각장애 학생의 미술작품들
시각장애 학생의 미술작품들

 

전시회는 문맥을 만드는 활동이다. 서로 관련이 없는(혹은 부족한) 작품과 콘텐츠를 하나의 주제로 묶어서, 하나의 공간에 전시한다. 소설의 기승전결을 따라 읽도록 작가가 의도하는 것처럼, 큐레이터는 관람객의 동선, 작품의 배치 등을 통해 하나의 이야기를 만든다. 맹학교 학생들의 전시회도 모르는 사람이 보면 실패한, 망친 작품이겠지만 전시장 안에서 만큼은 빠져서는 안 되는 중요한 요소이다. 맹학교의 아이들도 작품을 기획하고, 만들고, 전시하면서 스스로를 중요한 존재임을 인식한다. 

 

그걸 보는 나도 인간에게, 아이들에게,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문화활동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기존의 문화와 관련된 지원은 ‘문화 바우처’, ‘티켓 할인’ 등 ‘문화 소비’에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이는 반쪽만 지원하는 사업이고 문화사업의 반대편에 있는 ‘문화 생산’에 대한 지원도 더 많아져야 한다고 느꼈다. 

 

내가 만든 이론이지만 문화 산업은 ‘문화 생산자’와 ‘문화 소비자’의 파이에 따라 결정되고, 소외되고 있는 장애인들을 ‘문화 소비’ 시장에 참여하게만 하는 복지 제도에서 벗어나, ‘문화 생산‘시장에도 참여할 수 있는 제도를 확충하여 ’ 문화 산업‘ 시장 전체가 커질 수 있는 선순환을 만든다. 즉 ‘문화생산자’의 파이에도 장애인들이 쉽게 들어온다면, 대한민국의 문화산업 전체가 커질 수 있을 것이다. 

 

엔비디아 비주얼 서포터스가 나에게 남긴 것은 ‘처음으로 끝까지 완주한 대외활동’과 ‘남은 대학생활 동안 나는 어떤 사회복지를 해야 하는가.’라는 고민을 끝낸 아주 중요한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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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포터즈의 메일 활동 장소는 서울에 위치한 맹학교였다. 맹학교에서 진행하는 미술수업의 보조교사로 활동했다. 맹학교의 특징상 회화보다는 촉각을 필요로 하는 만들기 수업도 꽤 있었고, 특히나 사진 수업도 있었다.

 

그리고 많은 비장애인, 그리고 다른 유형의 장애인들도 잘 모르는 분들이 많다. 

 

‘어떻게 앞이 안보이는데 미술을 할 수 있느냐.’


흔히 생각할 때 시각장애인은 완전히 앞을 못본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아무래도 대중매체에서 시각장애인을 그렇게 표현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도 있으리라.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앞을 아예 보지 못함’ 유형은 전맹이라고 해서 시각장애 스펙트럼의 일부분이다. 희미하게 형체정도는 구분할 수 있는 장애스펙트럼도 있다.

 

장애등급상    

1급 : 좋은 눈의 시력이 0.02이하인 사람
2급 : 좋은 눈의 시력이 0.04이하인 사람
3급 1호 : 좋은 눈의 시력이 0.06이하인 사람
3급 2호 : 두 눈의 시야가 각각 모든 방향에서 5도 이하로 남은 사람
4급 1호 : 좋은 눈의 시력이 0.1이하인 사람

 

이렇게 시각장애로 판정된다.

 

두번째 오해는 ‘색을 인식할 수 있는가’

 

첫번째 오해로 인해 자연스레 드는 추가 의문이다. 앞서 말했다시피 희미하게나마 보이는 장애수준도 있을 뿐더러, 선천 보다는 후천적으로 시각장애 판정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앞이 보이던 시절이 있기 때문에 색에 대한 인지는 충분히 가능하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와서, 맹학교 미술수업에는 초등학생의 학생들에게 1대1로 매칭이 되어 수업을 보조했다. 학생들의 수업 열정은 매우 높았다. 미술 선생님의 질문에도 너도나도 손을 들고 대답했고, 자신이 만든 작품을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사진 촬영은 학교 내와 학교 인근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촬영을 했다. 서포터즈는 이동을 보조하교, 촬영된 사진을 말로 묘사하는 것만 도와줄 뿐, 구도를 잡고 촬영하는 것은 온전히 학생들의 몫이었다.

디지털카메라를 만지는 시각장애아동
카메라 액정화면을 가리키면서 원하는 구도대로 찍혔는지 확인해준다.

 

운동장에서 사진을 찍는 시각장애아동과 서포터즈
열정적인 사진작가와 모델들

서포터즈 활동은 약 1년간 진행되었는데, 내가 직접 수업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해볼 수 있는 기회도 가졌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주제는 ‘탈 만들기’. 전통탈을 직접 만지고 써보면서, 다양한 탈의 역할을 이해하고 나만의 탈을 만들어 보고자 했다.

 

그래서 직접 인사동에 가서 전통탈을 하나 샀다. 

 

노장탈 실물

 

흔히 생각하는 안동 하회탈 대신에, 어떤 탈이 괜찮을까 하다 눈에 띈 탈이 봉산탈춤에서 승려 역할의 ‘노장탈’이었다. 흑과 백으로 색 대비가 크고, 다른 장식 없이 이목구비가 뚜렷했다. (그리고 나중에 이 탈은 유럽여행 당시 베네치아의 가면 대신으로도 사용했다.) 학생들은 탈을 직접 만져보고 써보면서 즐거워했다. 서포터즈들은 옆에서 손으로 지나가는 부분을 말로 묘사해주었다. 

 

‘입술이 붉은색이고, 턱 끝까지 찢어져있네.‘
’지금 만지는 곳은 눈썹이 있는 부분인데, 검정, 빨강, 흰색이 번갈아 칠해져있어‘
’얼굴 표면에는 하얀색 점이 많이 박혀있어‘

 

여러번 걸쳐 탈을 만져보고, 그 후에는 학생들이 직접 탈을 만들어보았다.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빈 종이탈을 하나씩 나누어주고, 원하는대로 꾸미게 했다.

 

탈과 대본
직접 인사동에 가서 사온 탈과 대본

 

시각장애아동들이 만드는 종이탈시각장애아동들이 만드는 종이탈아이들이 직접 만든 종이탈
 
 
아이들이 만든 작품들

학생들은 종이탈을 만져가면서 눈 주변에는 이 색깔, 볼에는 이 색깔을 칠하겠다며 구체적으로 색을 말했다. 그러면 옆에 있는 서포터즈들이 색칠도구(크레파스, 색연필, 싸인펜 등)에서 알맞는 색을 찾아서 건네 주었다. 역시나 아이들이 즐거워하면서 종이탈을 꾸미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벅차올랐다. 실습 때도 느꼈던 그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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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활때 그리 많은 대외활동을 하지 못했다. 배드민턴 동아리 활동도 2년정도 했고, 국립민속박물관 봉사활동도 절반정도 밖에 못했다. 그럼에도 내가 유일하게 장기간이면서 끝까지 완료한 대외활동이 엔비디아 비주얼서포터즈였다.

 

이 활동도 큐레이터 카페에서 공고를 확인했다. 그때는 시각장애인(아동)의 문화활동이라니. 구체적으로는 맹학교 내의 미술보조교사 활동. 이건 내가 무조건해야하는 활동이었다. 그리고 엔비디아라는 국제적인 기업의 대외활동이라니. 나도 이력서에 한 줄은 추가해야하지 않겠는가.

 

엔비디아 비주얼서포터즈 모집 포스터

 

역시 대기업의 대외활동이다보니 경쟁률이 만만치 않았다. 면접까지 있었다. 다대다면접이었고 엔비디아 코리아 서울 사무실에서 진행되었다. 봉은사역의 무역타워안에는 그 면접 때문에 처음 들어가봤다. 안에 들어가보니 면접을 보기 위한 대학생들이 많았다. 내 이름이 적힌 명찰을 가슴팍에 꽂고 면접을 기다렸다. 이윽고 면접장 안으로 들어갔다. 나를 포함해서 4명이 면접조였다. 자기소개를 시작으로 왜 이 대외활동에 지원하였는지 같은 질문이 이어졌다.

 

면접 당시의 기억은 거의 나지 않는다.(시간이 얼마나 많이 지났는데.) 어찌어찌 면접을 끝내고 결과를 기다렸다. 그리고 당당히 합격! 합격자들과 함께 1박2일간의 워크샵이 기다리고 있었다. 장소는 바닷가 근처 어딘가. 숙소도 근사하고 식사도 뷔페였다. 역시 대기업이다며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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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합격자의 수는 약 20명정도였는데, 남자가 나를 포함해 딱 2명 뿐이었다. 사회복지학과 성비가 1대1이었는데도, 이렇게 여자가 많은 무리는 처음이었다. 당시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 강했던 터라, 여자 합격자들끼리 친해지고 할때도 나+다른 남자 합격자는 초반에 어울리기 힘들었다. 말 그대로 ‘기가 빨렸다.’

 

워크샵 프로그램 중에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안경 만들기‘도 있었다. 진짜 보이는 안경을 만드는 건 아니고, 각종 재료를 활용해서 상상해서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진 촬영. 각자 물감을 손바닥에 묻혀서 현수막에 찍고, 그것을 들고 단체 사진을 촬영했다. 

 

이렇게 간단한 워크샵을 마치고, 3월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https://litt.ly/locomango

 

F2F캠페인부터 기업사회공헌까지

작은 비영리단체에서 대형 비영리단체까지 모금을 하고 있습니다.

litt.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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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복지’라는 첫 로드맵을 잡은 후에는 앞서 기록했던 것처럼, 자유주제 과제는 이 컨셉을 활용했다. 프로그램 개발과 평가(이후 ‘프개평’) 과목은 이 부분에서 가장 독보적으로 활개를 칠 수 있는 과목이었다. 사회복지학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개인과제’가 메인이기 때문이다. (사회복지학과는 조별과제 매우 많다.)

 

프개평 과목은 프로그램 개발과 평가에 관한 이론+직접 프로그램 개발+발표 3 파트로 나뉜다. 당연 직접 프로그램 개발 부분에 내 노력을 쏟아부었다. 중간고사 기간 이전까지 앞 부분을(평가 이전 부분까지), 이후 기말고사까지 최종 완성이 과제였다. 

 

대상자 : 특정 지역 위치한 장애인
장소 : 서울 성북구
자원 : 성북장애인복지관, 지자체, 성북구 내 박물관, 성북구 내 대학교 사학과
내용 : 성북구 내 장애인들의 문화체험 수준을 높이기 위한 사업

(자료를 찾을 수 없어서, 기억에 의존해서 쓰고 있다.)

 

당시 장애인복지관의 실습과 큐레이터 준비 경험을 토대로 필요성과 사업개요를 작성해나갔다. 아주 술술 잘 써내려졌다. 참고자료도 다양하게 넣었다. 중간고사는 이 과제를 평가하는 것으로 대체했다. 그리고 나는 여기서 유일하게 에이쁠을 받았다. 내 인생 유일 에이쁠이 아닌, 프개평 수업을 받는 학생 중 유일하게 에이쁠. 당시 교수님은 한명씩 불러서 이 점수가 나오는 이유를 설명해주셨다.

 

이유는 다양한 참고자료를 잘 넣었고 + 프로그램 진행 방식이 다른 학생들은 사회복지관을 기반으로 하는(사회복지관에서 할 법한) 사업인데 반해, 내가 만든 프로그램은 외부의 다양한 자원을 협의체처럼 운영하는 방식으로 기획했다는 참신함을 높게 평가해주셨다.

 

기말고사 과제는 ‘중간고사 과제 피드백 반영 + 사업 평가 지표 반영’이 포함된다. 그리고 내가 만든 프로그램을 다른 학생들 앞에서 발표 한다. ppt를 띄어놓고 한명씩 하는 발표가 아니라, 계획서를 그냥 출력해서 각자 벽에 붙인다. 그리고 각자 돌아다니면서 계획서를 보고 궁금한게 있으면 옆에 서 있는 당사자한테 물어보는 식이었다. 마치 건축학과나 미대의 졸업작품 전시회 스타일처럼.

 

그리고 기말고사까지 당당히 에이쁠 획득!

 

학교 성적증명서

 

가고 싶은 길(하고 싶은 일과는 조금 다르다. 하고 싶은 일은 직무와 관련되고, 가고 싶은 길은 분야(=섹터)와 직업관과 관련 된다.)을 찾아내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고, 내가 잘하는 것을 아는 것. 대학교에서 전혀 다른 분야의 복수전공과 외부 교육 등을 받으면서 위의 3가지를 확실히 찾는 좋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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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수업을 듣고 실습을 했다고 해서 사회복지사를 시켜주는 것은 아니다. ’ 학사‘이상의 학위를 요구하고 있기에, 나 또한 대학교를 졸업해야 했다. 각 학교마다 졸업요건이 다양한데, 당시 우리 학교는 영어점수를 요구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영어 무관심을 넘어서 극혐 하던 나에게 토익과 오픽 점수는 너무 가혹했다. 하지만 어찌하겠는가. 까라면 까야지

 

영어책을 읽는 소녀
출처 : Pixabay

 

수능공부도 학원, 인강 없이 독학했지만 영어만큼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흔히 아는 대형학원보다는 등록금 뽕을 뽑기 위해서, 교내 어학원의 토익 클래스에 등록했다. 일정 점수 이상을 받으면 비용을 돌려주는 환급반이었다. 

 

일주일에 2번 정도인가 교실에 가서 수업을 들었다. 그런데 분명 나 말고 등록한 학생은 있었는데, 어느 순간 나 혼자 와서 수업을 들었다. 그래서 초반에 하던 출석체크도 굳이 할 필요도 없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나까지 안 왔으면 강사님은 그냥 공짜 쉬는 시간이었을 텐데, 굳이 내가 열심히 가서 수업을 들었나?라는 생각이 든다

 

확실히 수업을 등록해서 듣는 토익공부는 효과가 있었다. 토익은 지금도 그렇지만 순수 영어실력 테스트보다는 스킬활용에 가깝게 느껴진다. 문제를 분석해서 최대한 효율적으로 답을 찾는 과정이 많다. 그래서 단순 암기가 많았다. 고등학교 수능영어 때도 느꼈지만, 나는 이해가 안 되면 암기가 잘 안 된다. 흐름과 그 과정이 이해가 되면 암기가 잘된다. 당시 수능 과목이었던 윤리와 사상은 문제집 자체를 아예 통째로 다 외웠었다. 왜냐하면 이해가 되었으니까. 그러나 영어는 아니었다. 1 형식, 2 형식부터 왜 저렇게 나눈 건지 몰랐고, ’이 문제의 답은 5 형식이기 때문에 이게 들어간다.‘이렇게 해석을 해버리니 와닿지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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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본론으로 다시 돌아와서, 강사님은 최대하 이해를 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가르쳐주셨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another가  an+other라는 것. 그리고 have a reservation(의구심을 갖다)와 made a reservation(예약을 하다)는 본인이 실제 시험장에서 처음 본 구문이라서 틀렸다는 것.

 

그렇게 첫 번째 토익 시험을 치렀다. 600점대가 나왔다. 환급 기준에 많이 부족했다. 그래도 시험의 감을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기적적으로 2번째 시험에서 점수가 800점이 나왔다. 내가 죽어라 공부를... 하지는 않았지만, 그때 토익 시험 유형이 급격하게 바뀌었다. 파트 5의 문제 숫자가 줄고, 파트 6,7,8의 유형도 메신저 등 현재에서 사용할 만한 형식이 많이 나왔다.

 

나의 최대 약점이었던 문법이 줄어들고, 강점인 독해가 익숙한 형태로 나온다? 그럼 말 다했지. 당당히 등록비의 절반을 환급받았다. 이걸로 영어와의 악연이 끝나면 좋았겠지만, 리딩과 리스닝 점수 외에도 스피킹 점수도 냈어야 했다. 토익스피킹 또는 오픽 점수가 또 필요했다. 자유로운 답변이 가능하다는 오픽에 도전했다. 등급은 딱 IL이상만 나오면 되었다.

 

읽기&듣기보다 말하기&쓰기가 더 어렵다. 한국형 영어교육에 익숙해진 나에게는. 오픽은 별도 수업을 듣지 않았다. 무슨 생각에 자신감이었는지 모르겠지만, 토익공부하던 감을 가지고 그대로 정말 최소한의 독학을 하고 시험을 쳤다. 오픽은 시험 당일날 시험장으로 향했다. 시험장은 매우 작았다. 앞 타임 시험을 보고 다음 시험 타이밍을 기다렸다. 시험장안은 예전 고등학교 어학실처럼 좁은 칸막이책상에 컴퓨터와 헤드셋이 놓여있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시험문제는 ‘친구들과 비디오를 같이 보려는 상황에서, 기계가 고장이 난 상황‘이 주어졌다. (물론 영어로) 뭔가 더듬더듬 대답을 했었을 것이다. 그러니 한 번에 IL등급을 받았지.

 

파파고, 구글번역이 지금쯤이면 완벽한 영어 번역기를 내주기를 기대하면서, 사회복지를 하는데 영어가 많이 쓰이지 않으니, 이런 핑계를 대면서 피했던 영어 시험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그때 이후로 영어는 쳐다도 안 보다가, 최근에 급하게 다시 영어성적이 필요해서 1주일만 공부해서 시험을 쳤었다. LC는 시간이 없어서 공부하지 않고 RC만 공부했는데, 웬걸 LC에서 400점이 나오고, RC는 265점..

 

정말 영어는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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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터에서 사회복지, 그 중에서 장애인복지로 진로를 잡은 후에는 새로운 계획이 필요했다. 3학년때 날려먹은 학점을 다시 복구해야했고, 졸업기준인 영어성적을 맞춰야했고, 필수전공이자 사회복지사 자격증에 필수인 사회복지실습을 해야했다. 실습처를 직접 찾고, 신청서를 제출하고 면접까지 보는 지루하지마 긴장된 과정이었다. 대부분 사회복지관에서는 방학 기간에 맞춰서 실습을 진행하기 때문에, 이때 실습을 진행하지 못하면 졸업에 문제가 생긴다. 좋은 실습자리를 조금이라도 빨리 잡기 위해서 실습 공고 사이트를 들락날락했다. 총 2곳의 실습면접을 거쳤고, 다행히도 서울 성북구에 있는 성북장애인복지관에서 실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실습생을 나를 포함해서 2명뿐이었다. 직장인이 되어 여러 기수의 실습을 보았지만, 내가 실습받을 때 인원이 적긴 적었다. 

 

실습생은 대학생이지만 직장인의 체험도 하기 때문에, 방학 1달동안 강제 9 to 6를 하게 되었다. 출근해서 실습실에서 대기하고 있으면 오전 3시간 커리큘럼, 점심식사 후 오후 2~3개의 커리큘럼을 듣게 된다. 사회복지기관의 구조, 프로그램 기획 및 진행, 사회복지행정, 1박2일 캠프, 캠페인 등 대학교에서 이론으로 듣기만 했던 것들이 ’얼마나 머리를 쥐어짜야’ 겨우 나오는지 알 수 있었다.

여러 커리큘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3가지는 프로그램 개발 및 진행, 1박 2일 캠프, 장애인식개선캠페인이었다.


- 프로그램 개발 및 진행

 

한타임정도 직접 대상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해보는 커리큘럼이다. 나는 당시 큐레이터 준비할 때 아이디어 메모를 자주 했는데, 거기에 기록해놓은 아이디어를 활용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아이디어를 실제 실행가능한 계획서를 작성하고, 계획서 피드백과 수정을 거쳤다. 그렇게 피드백을 거쳐 최종적으로 완성된 사업은 장애아동의 소근육 발달과 창의성 발달을 위한 ‘시골집 앞마당 만들기‘였다.

 

싸이월드 형태의 3D 입면체 안에 본인이 상상하는 ’시골 앞마당‘에 어울리는 물품을 배치해보고, 이를 직접 보고 그림으로 까지 그려보는 것이었다. 프로그램을 도와주던 봉사자 한분이 기존 학교 교육과정 중에 비슷한 과정이 있다고 했었다. 

 

내가 새로 만든 프로그램이다 보니 당연히 교구는 없었고 내가 직접 다 만들어야했다. 우드락을 구매해서 아동 수별로 입면체를 만들고, 나무, 가축 등 다양한 이미지를 인쇄해서 하나하나 다 수작업으로 모형을 만들었다.

실습 준비물
실습 진행
아동 실습 결과물

프로그램이 시작되고 간단한 질문을 통해 아이들의 흥미를 이끌어내고, 본격적으로 만들기에 돌입했다. 봉사자 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정말 어려웠다. 계획에 없던 변수들이 생겨서 실습동기와 허둥지둥 프로그램실을 돌아다녔다. 나중에 그 과정이 좀 아쉬웠다는 피드백을 받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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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박 2일 캠프

 

겨울방학에 실습이 이루어졌고, 당연히 방학을 활용하여 장애아동들이 즐겁게 놀 수 있는 1박 2일 캠프가 포함되어 있었다. 아동, 봉사자, 실습생, 담당 사회복지사가 동행하는 꽤 많은 인원의 프로그램이었다. 겨울, 야외에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구성되어 있었다. 얼음썰매, 캠프파이어, 딸기 따기 체험, 요리 등 아동, 봉사자와 함께 즐겁게 놀았다. 실습 내 프로그램 진행 중에 내가 담당하는 아동이 1명 있었다., 캠프를 직접 가서 그 아동이 피아노를 좋아하는 알게 되었다. 피아노 건반을 치는 행동을 하면 아주 좋아했다.

프로그램 계획서

- 장애인식개선캠페인

 

성북장애인복지관은 이후에 내가 취업하는 장애복지법인에서 위탁운영하는 복지관이다. 자연스럽게 장애 관련 콘텐츠가 많았고, 역대 실습에서는 복지관 인근을 나가 자원개발 겸 장애인식개선캠페인을 진행했다. 당연히 우리도 해당이 되었다. 원래대로라면 나가야 했지만 날씨의 영향으로 관내에서 이용자분들을 대상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캠페인 기획 아이디어
캠페인 기획 아이디어
캠페인 기획 아이디어
캠페인 기획 아이디어

처음에는 전지에 무언가를 쓰고 그리려 했는데, 둘 모두 영 손글씨에 재주가 없었다. 그래서 급하게 캠페인 내용을 출력해서 화일에 끼는 것으로 전략을 바꿨다. 담당 복지사님도 1층에 요구르트를 세팅해주시면서 캠페인 참여를 도와주셨다. 복지사님이 1층 로비에서 관내 이용자님들에게 ‘요구르트 드시고 캠페인에 참여해주세요.’라고 하면 나와 동기가 차례대로 옆에 붙어서 캠페인을 진행했다. 관내 이용자분들은 캠페인에 대단히 호의적이셔서 마음 편안히 캠페인을 진행할 수 있었다.

 

실습을 해야 했을때는 많이 귀찮고 꼭 해야하는건가라는 불만이 있었는데, 막상하고 나니 많은 것들이 내게 남았다. 특히 내가 직접 기획하고 / 준비하고 / 진행한 프로그램을 아동들이 신나하면서 만드는 것을 보고 정말 처음으로 느껴보는 쾌감, 짜릿함을 느꼈다. 내가 만든 사업은 내 자식과 같은 존재인데, 내 자식이 칭찬받으면 이런 기분일까 싶다. 

 

아 참고로 원래 실습을 하면 기관에 실습비 명목으로 일정 금액을 내야한다. 아마 거기에 급식비 등이 포함되어 있는데, 내가 실습을 받았던 복지관은 실습장학생이라는 명목하에 오히려 장학금 10만원을 받고 실습을 받았다. 전공수업 실습발표 때 장학금을 받았던 곳은 내가 다녔던 기관고 모법인뿐이었다. 이후 그 법인에 취업했고, 거기서는 실습장학생들에게 100만원씩 지원해주었다. 확실히 장학금을 받고 실습을 받으니 더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지금도 실습을 준비하고 하고 있는 모든 예비 사회복지사분들 화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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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여러 정보를 얻고 혼자서 공부할 때, 카페에서 번개모임을 하는데 올 사람을 찾는 글이 보였다. 장소는 국립중앙박물과 메인 건물 앞이었다. 다른 참석자들을 위해서 자료도 하나씩 준비해오라고도했다.

 

편의점 알바 시간을 바꾸고, 자료를 정리해서 출력해서 약속 당일날, 박물관으로 향했다. 그런데 정작 참석자들의 연락처가 없었다 보니 누가 참석자인지, 정확히 어느 포인트에서 만나야 하는지 몰랐다. 그래서 무작정 기다렸다. 가을 날씨였지만 해가 지니 많이 쌀쌀했다. 해가 완전히 지고 나와, 어떤 어른 한분만이 계셨다. 

 

모이기로 한 참석자는 4명인데, 시간이 다 되도록 나와 그 어른 분만 장소에 있었다. 날씨는 점점 추워지고 폰 배터리도 떨어져 가던 중에 한 분이 허겁지겁 오면서 겨우 모임이 성사되었다.

 

내가 생각했던 스터디 같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냥 서로 간의 정보를 공유하고, 저녁으로 닭갈비를 먹었다. 모인 4명 중에 내가 제일 나이가 어렸다. 그리고 1분은 대학원생이셨고, 1분은 전혀 관련 없는 전공이셨다. 저녁으로 통째로 소비한 것 치고는 소득이 그렇게 높은 만남은 아니었지만, 비전공자가 전문 직업을 준비하면서 느끼는 고민을 많이 나눌 수 있었다.

 

이후로도 계속해서 공부를 지속했다. 사회복지전공 수업을 하면서 자격증 준비와 알바까지 하는 게 쉽진 않았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온라인 교육은 야간 편의점 알바를 가기 전에 조금씩 챙겨 들었고, 문화사(세계사)는 학교 쉬는 시간에 틈틈이 공부했다.

 

그렇게 공부를 하다가 광화문 근처에 위치한 박노수 미술관에서 봉사자를 구한다는 공고를 봤다. 아마 큐레이터 준비 카페였을 것이다. 규모는 크지 않았고, 박노수 작가가 소유하 더 집을 개조해서 미술관으로 운영 중이었다.  

 

https://www.jfac.or.kr/site/main/content/parkns01

 

박노수미술관

종로문화재단,박노수미술관 소개 소개 추진사업 전시중인 소장품 아트상품 오시는길 화가의 가옥, 예술품의 보고 종로구립 박노수미술관은 서울시 1종 등록미술관으로 박노수 화백의 기증작품

www.jfac.or.kr:443

 

 

주로 하는 일은 오픈 청소와 방문객이 오면 티켓 출력을 도와주고, 전시시간 동안 작품 근처에서 안내를 도와주는 역할이었다. 삐걱거리는 나무 바닥을 부직포밀대로 청소하고, 먼지를 닦는 간단한 청소를 끝내고 나면 관람객이 올 때까지 가만히 서서 고요함을 느꼈다. 정원을 보면서 전시 디자인을 혼자서 기획해보기도 했다. 정원에 놓인 석상을 보면서 동양의 석상과 서양의 석상을 비교해 보는 전시, 장원급제 합격자들을 답안지, 문과 관련된 전시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메모했다.

 

큐레이터 준비하면 썼던 아이디어 노트

 

아이디어 노트

당시 메모지의 일부


 

그렇게 시험일정이 다가왔다. 박물관학은 무난했었다. 영어는 역시나 어려웠다. 그때 당시에는 본격적으로 토익공부를 하기 전이기 때문에, 수능 영어가 전부였던 나에게는 어려웠다. 그리고 문제의 선택과목이었다. 한국사에는 2문제가 나왔는데, 첫 문제만 기억이 난다. 

 

[고려와 조선의 지방사회를 비교하시오.]

 

이렇게 대질문이 하나 나오고 그 밑에 소질문이 3개 정도 있었다. 그래도 이걸 서술형으로 아는 대로 다 써야 하고, 답안지 크기도 진짜 커서 어디서부터 써야 할지 막막했었다. 국사과목의 기억을 최대한 살려서 고려는 매향과 호족, 조선은 향교와 지방관을 키워드로 작성했다.

 

문화사는 다음 2문제가 나왔다.(정확한 명칭에서 오류가 있을 수 있다.)

[중국 청나라 강희제 시대를 서술하시오.]
[유럽의 30년 전쟁을 서술하시오]

 

이 문제를 받고 망했다는 생각을 했다. 중국사는 미처 거기까지 진도가 나가지 못했다. 유럽의 30년 전쟁은 100년 전쟁과 내용이 헷갈렸다. 그래서 각각 50점 배점이라고 생각해서 중국사는 포기하고 서양사만 집중해서 쓰기로 했다. 모든 내용을 다 손으로 써야 했기에, 손가락이 부러져라 작성했다.

 

시험을 무사히 마치고, 결과를 기다렸다. 결과발표가 12월인가 그랬던 거 같았다. 현재 성적표는 찾아볼 수 없지만(큐넷 홈페이지에서 최근 1년만 검색이 된다.) 문화사는 과락을 겨우 넘겼다. 그리고 합격 기준인 평균 60점에서 평균 1.5점이 부족했다. 

 

문화사 혹은 영어에서 좀 만 더 공부했더라면! 잠깐의 후회는 했지만, ITNJ의 성격상 바로 다음 계획을 짜야했다.  다음 시험을 준비할 것인가. 아니면 전공을 살려서 취업을 준비할 것인가. 아니면 대학원 코스를 밟을 것인가. 

 

1. 다음 시험을 준비한다. : 1년에 한 번 있는 시험이라 다시 1년을 준비해야 한다.
2. 전공을 살려 취업을 준비한다. : 인문계인 국사학과보다는 정경계열인 사회복지학과가 취업에 더 유리하니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준비해야 한다.
3. 대학원 코스를 알아본다. : 입학은 둘째 치고, 취업을 미루고 대학원 입학 비용을 걱정해야 한다.

 

여러 과정을 고민하지만 ‘이거다!’하는 선택이 없었다. 그렇게 대학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시간을 보낼 때 우연히 찾게 된 ‘국립민속박물관의 봉사활동 공고‘ 이 활동이 나의 진로선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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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7 - [사회복지에서 살아남기(Survivng the Social Sector)] - [Chapter 1. 사회복지학과에서 살아남기]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사회복지와 국사학의 융합의 길을 찾다.

 

[Chapter 1. 사회복지학과에서 살아남기]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사회복지와 국사학의 융합의 길을 찾

2024.04.10 - [사회복지에서 살아남기(Survivng the Social Sector)] - [Chapter 1. 사회복지학과에서 살아남기] 국사학과를 복수전공하다. [Chapter 1. 사회복지학과에서 살아남기] 국사학과를 복수전공하다.2024.

npo-archiving.tistory.com

 

 

대학생활 초반, 우연히 접하게 된 박물관 봉사활동은 내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그 경험을 통해 박물관 큐레이터라는 진로를 발견하게 된 것이죠. 당시만 해도 큐레이터라는 직업은 생소한 편으로, 고등학교 모의고사에서 지문으로 딱 한번 접해왔던 직업이었습니다. 호기심과 열정을 가지고 깊이 있게 탐구해 보기로 했습니다.

 

구글과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큐레이터의 업무, 자격 요건, 채용 과정, 연봉 등 다양한 정보를 수집했습니다. 큐레이터가 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대학원 진학 후 석사 학위 취득과 준학예사 시험 합격이 있었습니다. 

 

대학원 진학 루트는 관련 분야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관련 기관에서 경력을 쌓아 3급 정학예사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준학예사 시험 합격 루트는 시험 합격 후 관련 기관에서 경력을 쌓아 큐레이터로 활동할 수 있지만, 필요 경력 기간이 더 길다고 합니다.

 

고민 끝에 대학원 진학보다는 준학예사 시험 준비에 초점을 맞추기로 결정했습니다. 대학원 루트를 타는 정학예사를 더 인정해 주었지만,대학원 진학 등록금 부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준학예사 시험은 큐넷을 통해 접수하고 1년에 치러집니다. 필수 과목인 박물관학과 외국어 과목 외에도 선택과목 2개를 골라 서술형으로 시험을 치르게 됩니다. 선택과목으로는 고고학, 미술사학, 예술학, 민속학, 서지학, 한국사, 인류학, 자연사, 과학사, 문화사, 보존과학, 전시기획론, 문학사 13 과목 중에서 선택할 있습니다.

 

선택과목은 그나마 자신있는 한국사와 문화사(문화사라고 되어 있지만 세계사)로 선택했습니다.

 

홍보라매 교수님의 박물관학 관련 서적은 준학예사 시험 준비에 필수적인 자료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최신 기출문제와 노하우를 접할 수 있었고, 이는 저에게 큰 도움이 되었고 꿈에 도전한다는 기대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박물관학(2021)
[특징] 준학예사ㆍ학예직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에게 가장 최적화된 교재! - 홍보라매 교수님의 시험 분석 노하우가 담긴 박물관학 핵심이론 수록! - 박물관학과 관련하여 수험생들이 꼭 알아야 할 박물관 관련 법령 수록 및 최신 개정법령 반영! - 홍보라매 교수님이 직접 복원한 기출문제와 2020 기출문제를 수록하여 실전에 대비 가능! - 국내 최초 준학예사 온라인 아카데미 큐레이터세상(www.curatorworld.co.kr)에서 동영상 강의(유료) 제공! - 네이버 카페 큐레이터세상(http://cafe.naver.com/hbrm)에서 준학예사와 관련된 다양한 정보 제공!
저자
홍보라매
출판
시대고시기획
출판일
2021.03.05

 

책 공부 외에도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의 이러닝 플랫폼을 활용했습니다. 이 플랫폼에서는 다양한 박물관학 관련 온라인 강의를 제공하고 있어, 실제 박물관 현장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었습니다. 학교 끝나고 집에서 매일 한 챕터씩 들으면서 공부했습니다.

 

필수 과목인 외국어 과목의 경우, 저는 영어를 선택했습니다. 영어는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공부해왔기 때문에 다른 외국어에 비해 그나마 유리한 입장이었습니다. 영어 시험 준비는 학교 수업에서 받는 영어수업으로 대체하는 방식으로 준비했습니다.

 

준학예사 시험은 필수과목인 박물관학과 외국어가 객관식으로 출제되는 반면, 선택과목은 모두 서술형 문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특히 선택과목의 경우 지문이 제공되지 않고 한 문장으로 문제가 출제되어, 이에 대한 자신의 지식을 최대한 상세히 기술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한편, 선택과목 준비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한국사는 군대에서 공부했던 한국사 1 자격증 교재를 활용하여 복습했고, 문화사 과목의 경우 서양사와 중국사 각각 1권씩의 책을 구입하여 정독하는 방식으로 대비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이 실제 시험에서는 적절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2014년 초, 저는 시험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시험은 연말에 있었기 때문에 3학년 학기 수업에 집중하기 어려웠습니다. 그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국의 큐레이터와 일반인을 대상으로 강의를 진행했는데, 이틀 연속 수업을 빠지고 참석했습니다. 당연히 출석 점수 부족으로 3학년 성적은 평점 3점을 겨우 넘겼습니다.

 

저는 학예사 준비 카페(네이버 카페 '큐레이터세상')에 가입하여 정보를 얻었습니다. 그곳에 올라오는 채용 공고를 보면서 현실적인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채용이 계약직이었고, 채용 자체도 많지 않아 과연 이 진로를 선택해도 되는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카페 가입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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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활동했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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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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