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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과정만큼 중요한 과정이 사진촬영 커리큘럼이었다. 이전 글과 마찬가지로 약간이라도 보이는 학생들도 있으므로 혼자서 사진촬영도 가능하다. 물론 옆에는 서포터즈들이 보조하지만. 카메라 조작법 교육을 시작으로 친구 사진, 학교 사진, 풍경 사진으로 점점 확대되어갔다. 여기서 나도 반셔터라는 걸 처음 알았다.

 

손으로 재료와 겉모습을 만질 수 있는 공작, 종이 위를 손가락으로 따라갈 수 있는 회화와는 다르게, 사진을 손만으로 무언가 하기 많이 어려운 작업이다. 우선 카메라의 접안 부분에 학생과 서포터즈가 동시에 눈을 대고 찍을 수 없다. 그래서 무엇을 대상으로 잡고, 초점을 제대로 잡는지 알기 어렵다. 디지털카메라의 화면을 보거나, 촬영하고 난 사진을 같이 보는 식이었다. 작은 화면이다 보니 손가락으로

 

’ 이 부분에 초점이 나갔고, 대상으로 하는 책상은 여기에 있어.‘

 

작은 화면을 손가락으로 같이 찍어주더라도 그건 도화지와 달리 매번 구도는 달라졌다. 그럼에도 학생들은 사진촬영에 매우 즐거워했다. 친구들을 모델로 사진을 찍을 때도 단순한 증명사진이 아니라, 가발을 쓰기도 했다. 학교를 주제로 사진을 찍을 때는 도자기 가마가 있는 학교 지하부터 곳곳을 돌아다녔다. 풍경사진을 찍을 때는 학교 인근의 산에 오르면서 산의 풍경을 찍었다. 

 


사진을 흔히 ’ 찰나의 예술‘이라고 한다. 일상의 흔히 지나가는 것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진짜 찰나의 순간을 고정시킨다. 같은 장면과 모델을 보고 누군가는 ’ 햇빛을 가득 받은 모습을‘, 또 누군가는 ’ 석양빛을 받으며 그늘진 모습을‘ 찍고 싶을 수 있다. 필름카메라의 느낌을 좋아하는 사람, 전문가의 후보정을 거친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 등 취향은 다양하다. 이처럼 사진에는 정답이 없다. 흔들리고, 초점이 나간 사진마저도 사진작가나 보는 사람에게는 울림이 있을 수 있다. 

 

엔비디아 서포터즈를 하면서 만났던 맹학교 학생들의 사진과 미술작품에도 정답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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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 서포터즈 활동이 끝날 때쯤, 학생들의 작품을 모아 전시회를 열었다.

 

 

 

 

전시회는 문맥을 만드는 활동이다. 서로 관련이 없는(혹은 부족한) 작품과 콘텐츠를 하나의 주제로 묶어서, 하나의 공간에 전시한다. 소설의 기승전결을 따라 읽도록 작가가 의도하는 것처럼, 큐레이터는 관람객의 동선, 작품의 배치 등을 통해 하나의 이야기를 만든다. 맹학교 학생들의 전시회도 모르는 사람이 보면 실패한, 망친 작품이겠지만 전시장 안에서 만큼은 빠져서는 안 되는 중요한 요소이다. 맹학교의 아이들도 작품을 기획하고, 만들고, 전시하면서 스스로를 중요한 존재임을 인식한다. 

 

그걸 보는 나도 인간에게, 아이들에게,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문화활동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기존의 문화와 관련된 지원은 ‘문화 바우처’, ‘티켓 할인’ 등 ‘문화 소비’에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이는 반쪽만 지원하는 사업이고 문화사업의 반대편에 있는 ‘문화 생산’에 대한 지원도 더 많아져야 한다고 느꼈다. 

 

내가 만든 이론이지만 문화 산업은 ‘문화 생산자’와 ‘문화 소비자’의 파이에 따라 결정되고, 소외되고 있는 장애인들을 ‘문화 소비’ 시장에 참여하게만 하는 복지 제도에서 벗어나, ‘문화 생산‘시장에도 참여할 수 있는 제도를 확충하여 ’ 문화 산업‘ 시장 전체가 커질 수 있는 선순환을 만든다. 즉 ‘문화생산자’의 파이에도 장애인들이 쉽게 들어온다면, 대한민국의 문화산업 전체가 커질 수 있을 것이다. 

 

엔비디아 비주얼 서포터스가 나에게 남긴 것은 ‘처음으로 끝까지 완주한 대외활동’과 ‘남은 대학생활 동안 나는 어떤 사회복지를 해야 하는가.’라는 고민을 끝낸 아주 중요한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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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포터즈의 메일 활동 장소는 서울에 위치한 맹학교였다. 맹학교에서 진행하는 미술수업의 보조교사로 활동했다. 맹학교의 특징상 회화보다는 촉각을 필요로 하는 만들기 수업도 꽤 있었고, 특히나 사진 수업도 있었다.

 

그리고 많은 비장애인, 그리고 다른 유형의 장애인들도 잘 모르는 분들이 많다. 

 

‘어떻게 앞이 안보이는데 미술을 할 수 있느냐.’


흔히 생각할 때 시각장애인은 완전히 앞을 못본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아무래도 대중매체에서 시각장애인을 그렇게 표현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도 있으리라.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앞을 아예 보지 못함’ 유형은 전맹이라고 해서 시각장애 스펙트럼의 일부분이다. 희미하게 형체정도는 구분할 수 있는 장애스펙트럼도 있다.

 

장애등급상    

1급 : 좋은 눈의 시력이 0.02이하인 사람
2급 : 좋은 눈의 시력이 0.04이하인 사람
3급 1호 : 좋은 눈의 시력이 0.06이하인 사람
3급 2호 : 두 눈의 시야가 각각 모든 방향에서 5도 이하로 남은 사람
4급 1호 : 좋은 눈의 시력이 0.1이하인 사람

 

이렇게 시각장애로 판정된다.

 

두번째 오해는 ‘색을 인식할 수 있는가’

 

첫번째 오해로 인해 자연스레 드는 추가 의문이다. 앞서 말했다시피 희미하게나마 보이는 장애수준도 있을 뿐더러, 선천 보다는 후천적으로 시각장애 판정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앞이 보이던 시절이 있기 때문에 색에 대한 인지는 충분히 가능하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와서, 맹학교 미술수업에는 초등학생의 학생들에게 1대1로 매칭이 되어 수업을 보조했다. 학생들의 수업 열정은 매우 높았다. 미술 선생님의 질문에도 너도나도 손을 들고 대답했고, 자신이 만든 작품을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사진 촬영은 학교 내와 학교 인근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촬영을 했다. 서포터즈는 이동을 보조하교, 촬영된 사진을 말로 묘사하는 것만 도와줄 뿐, 구도를 잡고 촬영하는 것은 온전히 학생들의 몫이었다.

디지털카메라를 만지는 시각장애아동
카메라 액정화면을 가리키면서 원하는 구도대로 찍혔는지 확인해준다.

 

운동장에서 사진을 찍는 시각장애아동과 서포터즈
열정적인 사진작가와 모델들

서포터즈 활동은 약 1년간 진행되었는데, 내가 직접 수업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해볼 수 있는 기회도 가졌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주제는 ‘탈 만들기’. 전통탈을 직접 만지고 써보면서, 다양한 탈의 역할을 이해하고 나만의 탈을 만들어 보고자 했다.

 

그래서 직접 인사동에 가서 전통탈을 하나 샀다. 

 

노장탈 실물

 

흔히 생각하는 안동 하회탈 대신에, 어떤 탈이 괜찮을까 하다 눈에 띈 탈이 봉산탈춤에서 승려 역할의 ‘노장탈’이었다. 흑과 백으로 색 대비가 크고, 다른 장식 없이 이목구비가 뚜렷했다. (그리고 나중에 이 탈은 유럽여행 당시 베네치아의 가면 대신으로도 사용했다.) 학생들은 탈을 직접 만져보고 써보면서 즐거워했다. 서포터즈들은 옆에서 손으로 지나가는 부분을 말로 묘사해주었다. 

 

‘입술이 붉은색이고, 턱 끝까지 찢어져있네.‘
’지금 만지는 곳은 눈썹이 있는 부분인데, 검정, 빨강, 흰색이 번갈아 칠해져있어‘
’얼굴 표면에는 하얀색 점이 많이 박혀있어‘

 

여러번 걸쳐 탈을 만져보고, 그 후에는 학생들이 직접 탈을 만들어보았다.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빈 종이탈을 하나씩 나누어주고, 원하는대로 꾸미게 했다.

 

탈과 대본
직접 인사동에 가서 사온 탈과 대본

 

시각장애아동들이 만드는 종이탈시각장애아동들이 만드는 종이탈아이들이 직접 만든 종이탈
 
 
아이들이 만든 작품들

학생들은 종이탈을 만져가면서 눈 주변에는 이 색깔, 볼에는 이 색깔을 칠하겠다며 구체적으로 색을 말했다. 그러면 옆에 있는 서포터즈들이 색칠도구(크레파스, 색연필, 싸인펜 등)에서 알맞는 색을 찾아서 건네 주었다. 역시나 아이들이 즐거워하면서 종이탈을 꾸미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벅차올랐다. 실습 때도 느꼈던 그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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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대전 방문했을 때 오씨칼국수를 먹고, 약간 부족한 느낌이 들었었다. 그래서 성심당을 지나 친구집 가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 중앙역 지하도를 걷고 있는데, 사람들이 왜인지 줄을 서있는게 아닌가. 그래서 무슨 줄인지 봤더니, 성심당에서 운영하는 우동집 <우동야> 줄이었다. 

 

우동야 입구우동야 주문 카운터

 

 

대전을 하도 오랜만에 오니, 이런게 생긴지도 몰랐고, 테이크아웃으로 컵우동을 판다길래 친구들끼리 2개 시켜서 맛만 보기로 했다. 


대전 성심당 우동야는 대전의 중심가에 위치해 있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에 매우 편리했다. 지하철을 타고 쉽게 찾아갈 수 있으며, 주변에 다양한 상점과 카페가 있어 식사 후에 쇼핑하기에도 좋은 장소였다. 특히, 지하철 역사 안에 위치해 있어 비 오는 날에도 걱정 없이 방문할 수 있었다.

 

 

홀식사는 먼저 자리를 잡고 주문해야 한다고 하는데, 우리는 어짜피 테이크아웃이라 바로 주문하기로 했다.

 

컵우동컵우동 크기


우동의 면은 두껍고 쫄깃한 식감이 일품이었다. 면의 양은 많지 않았지만, 그 쫄깃함이 정말 매력적이었다. 국물은 살짝 단맛이 강하고, 쯔유 맛이 느껴지며 끝에는 매콤한 느낌이 살짝 남았다. 이 국물 맛이 우동의 매력을 한층 더해주었다. 또한, 나무젓가락 하나는 오뎅에 끼워주고, 하나는 따로 담아주어 편리하게 먹을 수 있었다. 국물 내는 쯔유도 별도로 판매하고 있어, 취향에 맞게 조절할 수 있었다.

 

컵우동 어묵 크기


다음 날 아침, 다시 방문하여 원하는 튀김과 사이드를 담고 각자 우동을 주문했다. 나는 기본 우동을 다시 선택했는데,

 

우동야 가랜드

 

우동야 튀김코너

 

우동야 홀자리

 

친구들과 각자 담은 사이드

 

오픈런은 아니었지만 우동이 정말 빨리 나왔다. 자리에 앉고 세팅하니 바로 나와서 깜짝 놀랐다. 우동 국물은 여전히 맛있었지만, 기름짐이 느껴졌다. 가라아게를 잘라서 넣으니 더욱 기름짐이 느껴져서 중간에 시치미를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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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우동

 


야채튀김은 정말 두꺼워서 성인 남자 주먹보다 컸다. 하지만 차가워서 우동에 넣어 먹는 것을 추천했다. 가라아게는 잘 튀겨져서 짭짤한 맛이 일품이었다. 주먹밥은 참치 주먹밥을 선택했는데, 평범한 맛이어서 오히려 더 좋았다. 간단한 한 끼로는 정말 만족스러웠다.

 

가라아게를 얹은 우동
야채튀김참치주먹밥

 

주말 점심시간에 가면 웨이팅은 존재하지만, 그만큼 맛있고 가성비 좋은 음식을 제공하기 때문에 기다리는 보람이 있었다. 음식이 빨리 나와서 좋았다. 대전역 기차시간 애매할때 후다닥 먹을 수 있는 우동집으로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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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활때 그리 많은 대외활동을 하지 못했다. 배드민턴 동아리 활동도 2년정도 했고, 국립민속박물관 봉사활동도 절반정도 밖에 못했다. 그럼에도 내가 유일하게 장기간이면서 끝까지 완료한 대외활동이 엔비디아 비주얼서포터즈였다.

 

이 활동도 큐레이터 카페에서 공고를 확인했다. 그때는 시각장애인(아동)의 문화활동이라니. 구체적으로는 맹학교 내의 미술보조교사 활동. 이건 내가 무조건해야하는 활동이었다. 그리고 엔비디아라는 국제적인 기업의 대외활동이라니. 나도 이력서에 한 줄은 추가해야하지 않겠는가.

 

엔비디아 비주얼서포터즈 모집 포스터

 

역시 대기업의 대외활동이다보니 경쟁률이 만만치 않았다. 면접까지 있었다. 다대다면접이었고 엔비디아 코리아 서울 사무실에서 진행되었다. 봉은사역의 무역타워안에는 그 면접 때문에 처음 들어가봤다. 안에 들어가보니 면접을 보기 위한 대학생들이 많았다. 내 이름이 적힌 명찰을 가슴팍에 꽂고 면접을 기다렸다. 이윽고 면접장 안으로 들어갔다. 나를 포함해서 4명이 면접조였다. 자기소개를 시작으로 왜 이 대외활동에 지원하였는지 같은 질문이 이어졌다.

 

면접 당시의 기억은 거의 나지 않는다.(시간이 얼마나 많이 지났는데.) 어찌어찌 면접을 끝내고 결과를 기다렸다. 그리고 당당히 합격! 합격자들과 함께 1박2일간의 워크샵이 기다리고 있었다. 장소는 바닷가 근처 어딘가. 숙소도 근사하고 식사도 뷔페였다. 역시 대기업이다며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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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합격자의 수는 약 20명정도였는데, 남자가 나를 포함해 딱 2명 뿐이었다. 사회복지학과 성비가 1대1이었는데도, 이렇게 여자가 많은 무리는 처음이었다. 당시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 강했던 터라, 여자 합격자들끼리 친해지고 할때도 나+다른 남자 합격자는 초반에 어울리기 힘들었다. 말 그대로 ‘기가 빨렸다.’

 

워크샵 프로그램 중에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안경 만들기‘도 있었다. 진짜 보이는 안경을 만드는 건 아니고, 각종 재료를 활용해서 상상해서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진 촬영. 각자 물감을 손바닥에 묻혀서 현수막에 찍고, 그것을 들고 단체 사진을 촬영했다. 

 

이렇게 간단한 워크샵을 마치고, 3월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https://litt.ly/locomango

 

F2F캠페인부터 기업사회공헌까지

작은 비영리단체에서 대형 비영리단체까지 모금을 하고 있습니다.

litt.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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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단톡방에서 친구 집들이 겸 1박 2일 대전 관광을 가자고 정해졌을 때, 친구가 뭐 먹고 싶은 거 말하라고 했었고,


그때 몇년전에 여자친구와 수원과 부산 중간 지점인 대전에서 2주에 한 번씩 데이트를 즐기고 있을때마다 후보에 있었던 오씨칼국수를 말했었다.(이외에도 태화장도 말했었다.)

 

그렇게 각자 수원과 전주에서 출발했던 친구들이 대전에서 모였고, 택시를 타고 오씨칼국수로 이동했다. 가는 도중에 오씨칼국수 지도검색을 해보니 여러 가게가 나왔는데, 공식(?) 오씨칼국수는 2개뿐이라고 하니 참고하기를

 

삼성동본점과 도룡점만 운영한다는 오씨칼국수


주말 오전 11시, 오픈 시간 이전에 도착했지만 이미 가게는 만석이었다. 

 

도로가 위험하니 2층에서 대기하라는 안내문

 

대기 번호는 7번이었고, 대기 공간은 2층에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번호표와 전광판을 제공하여 대기 중에도 불편함이 없더군요. 30분 정도 기다린 후에 드디어 입장하게 되었다.

 

대기번호 7번

 

오씨칼국수 운영시간2층 대기공간

 


좌석에 앉기 전, 카운터에서 먼저 주문을 하고 자리에 착석했다. 

내부 실내

 

남자 3명이서 칼국수 2인분과 해물파전 1개를 주문했다. 테이블에 앉으면 김치가 제공되었는데, 생각보다 매운맛이 강했다. 빈속에 먹었더니 땀이 나서 정신이 없었다. 저녁에는 화장실을 여러 번 들락날락해야 했지.

테이블 항아리 김치
김치


칼국수는 대접에 넉넉하게 담겨 나왔다. 쌀쌀한 날씨에 국물이 따뜻하게 들어와서 정말 좋았다. 면은 쫄깃하게 잘 익었고, 국물의 깊은 맛이 일품이었다. 반쯤 먹고 있을 때 해물파전이 나왔다. 해물파전은 1장으로 나왔지만, 잘라서 2개로 제공되었다. 이 점은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칼국수 2인분칼국수 면발


해물파전은 솔직히 기대했던 것보다는 평범한 맛이었다. 파와 양파, 조개, 새우, 오징어가 들어있었는데, 굳이 추가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맛이 나쁘진 않았지만 칼국수가 메인이다 보니 해물파전은 선택사항으로 두는 것이 좋겠다.

 

해물파전

 

다먹은 빈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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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복지’라는 첫 로드맵을 잡은 후에는 앞서 기록했던 것처럼, 자유주제 과제는 이 컨셉을 활용했다. 프로그램 개발과 평가(이후 ‘프개평’) 과목은 이 부분에서 가장 독보적으로 활개를 칠 수 있는 과목이었다. 사회복지학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개인과제’가 메인이기 때문이다. (사회복지학과는 조별과제 매우 많다.)

 

프개평 과목은 프로그램 개발과 평가에 관한 이론+직접 프로그램 개발+발표 3 파트로 나뉜다. 당연 직접 프로그램 개발 부분에 내 노력을 쏟아부었다. 중간고사 기간 이전까지 앞 부분을(평가 이전 부분까지), 이후 기말고사까지 최종 완성이 과제였다. 

 

대상자 : 특정 지역 위치한 장애인
장소 : 서울 성북구
자원 : 성북장애인복지관, 지자체, 성북구 내 박물관, 성북구 내 대학교 사학과
내용 : 성북구 내 장애인들의 문화체험 수준을 높이기 위한 사업

(자료를 찾을 수 없어서, 기억에 의존해서 쓰고 있다.)

 

당시 장애인복지관의 실습과 큐레이터 준비 경험을 토대로 필요성과 사업개요를 작성해나갔다. 아주 술술 잘 써내려졌다. 참고자료도 다양하게 넣었다. 중간고사는 이 과제를 평가하는 것으로 대체했다. 그리고 나는 여기서 유일하게 에이쁠을 받았다. 내 인생 유일 에이쁠이 아닌, 프개평 수업을 받는 학생 중 유일하게 에이쁠. 당시 교수님은 한명씩 불러서 이 점수가 나오는 이유를 설명해주셨다.

 

이유는 다양한 참고자료를 잘 넣었고 + 프로그램 진행 방식이 다른 학생들은 사회복지관을 기반으로 하는(사회복지관에서 할 법한) 사업인데 반해, 내가 만든 프로그램은 외부의 다양한 자원을 협의체처럼 운영하는 방식으로 기획했다는 참신함을 높게 평가해주셨다.

 

기말고사 과제는 ‘중간고사 과제 피드백 반영 + 사업 평가 지표 반영’이 포함된다. 그리고 내가 만든 프로그램을 다른 학생들 앞에서 발표 한다. ppt를 띄어놓고 한명씩 하는 발표가 아니라, 계획서를 그냥 출력해서 각자 벽에 붙인다. 그리고 각자 돌아다니면서 계획서를 보고 궁금한게 있으면 옆에 서 있는 당사자한테 물어보는 식이었다. 마치 건축학과나 미대의 졸업작품 전시회 스타일처럼.

 

그리고 기말고사까지 당당히 에이쁠 획득!

 

학교 성적증명서

 

가고 싶은 길(하고 싶은 일과는 조금 다르다. 하고 싶은 일은 직무와 관련되고, 가고 싶은 길은 분야(=섹터)와 직업관과 관련 된다.)을 찾아내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고, 내가 잘하는 것을 아는 것. 대학교에서 전혀 다른 분야의 복수전공과 외부 교육 등을 받으면서 위의 3가지를 확실히 찾는 좋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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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연휴를 맞아 광주에서 위로 올라오는 길에 엄청난 폭설로 인해 군산과 평택에서 하루씩 머물게 되었습니다. 와이프가 평택에서 맛집을 찾던 중에 결정한 집이 최씨네부대찌개. 송탄부대찌개 스타일이라고 하는데, 송탄부대찌개는 몇 번 프랜차이즈 식으로 먹어본 경험이 있습니다. 대체로 부대찌개보다는 얼큰 묵직한, 굉장히 혈관에 미안한 맘이 느껴지게하는 햄찌개 느낌이라서 저의 입맛에 잘 맞았습니다.

 

맛집답게 매장에 들어서자 주차장에서는 주차 관리하시는 분이 계셨고, 심지어 경찰차가 들어와서 경찰관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역시 맛집이라는 느낌을 더욱 강화해 주었습니다. 매장 내부는 깔끔하고 넓었으며, 건물 입구를 기준으로 메인 주방과 식당 공간이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최네집부대찌기 실내

 

부대찌개를 주문하기 위해 테이블 키오스크를 이용했습니다. 저는 부대찌개 2인분과 라면사리를 선택했습니다. 미군부대가 근처에 있었던 곳이라 그런지, 스테이크도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찌개가 끓는 동안 뚜껑을 열지 말고 기다려야 했습니다. 음식이 나오는 시간이 기다려지는 만큼 더욱 기대감을 증대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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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찌개 맛있게 먹는법

 

드디어 부대찌개가 완성되어 나왔고, 대접에 밥도 함께 제공되었습니다. 부대찌개가 끓기 시작하니, 반 정도 먹고 나서 라면사리를 넣으라고 하셨습니다. 이곳에서는 신라면 면발이 부대찌개와 가장 잘 어울린다고 하여 신라면을 선택했습니다. 육수는 물론 햄, 파, 양파, 다진 마늘이 듬뿍 들어가 있어서 얼큰하면서도 개운한 맛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막 끓기 시작한 부대찌개밥이 있는 대접에 올린 부대찌개 한숟갈

 

 

부대찌개의 매력은 무엇보다 그 깊은 맛이었습니다. 일반적인 부대찌개와는 달리, 최씨네부대찌개는 더욱 진하고 개운한 국물 맛이 내 취향이었습니다. 특별히 신라면과의 조화는 정말 훌륭했습니다. 국물에 면발이 스며들고 육수가 쫄면서 부대볶음의 느낌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라면사리 투하라면과 볶아지는 부대찌개

 

다 먹고 나서 느낌이 참 좋았습니다. 다시 한 번 올 의향이 있는 맛집이었습니다. 평택에 오신다면 최씨네부대찌개를 꼭 추천드립니다.

 

빈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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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수업을 듣고 실습을 했다고 해서 사회복지사를 시켜주는 것은 아니다. ’ 학사‘이상의 학위를 요구하고 있기에, 나 또한 대학교를 졸업해야 했다. 각 학교마다 졸업요건이 다양한데, 당시 우리 학교는 영어점수를 요구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영어 무관심을 넘어서 극혐 하던 나에게 토익과 오픽 점수는 너무 가혹했다. 하지만 어찌하겠는가. 까라면 까야지

 

영어책을 읽는 소녀
출처 : Pixabay

 

수능공부도 학원, 인강 없이 독학했지만 영어만큼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흔히 아는 대형학원보다는 등록금 뽕을 뽑기 위해서, 교내 어학원의 토익 클래스에 등록했다. 일정 점수 이상을 받으면 비용을 돌려주는 환급반이었다. 

 

일주일에 2번 정도인가 교실에 가서 수업을 들었다. 그런데 분명 나 말고 등록한 학생은 있었는데, 어느 순간 나 혼자 와서 수업을 들었다. 그래서 초반에 하던 출석체크도 굳이 할 필요도 없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나까지 안 왔으면 강사님은 그냥 공짜 쉬는 시간이었을 텐데, 굳이 내가 열심히 가서 수업을 들었나?라는 생각이 든다

 

확실히 수업을 등록해서 듣는 토익공부는 효과가 있었다. 토익은 지금도 그렇지만 순수 영어실력 테스트보다는 스킬활용에 가깝게 느껴진다. 문제를 분석해서 최대한 효율적으로 답을 찾는 과정이 많다. 그래서 단순 암기가 많았다. 고등학교 수능영어 때도 느꼈지만, 나는 이해가 안 되면 암기가 잘 안 된다. 흐름과 그 과정이 이해가 되면 암기가 잘된다. 당시 수능 과목이었던 윤리와 사상은 문제집 자체를 아예 통째로 다 외웠었다. 왜냐하면 이해가 되었으니까. 그러나 영어는 아니었다. 1 형식, 2 형식부터 왜 저렇게 나눈 건지 몰랐고, ’이 문제의 답은 5 형식이기 때문에 이게 들어간다.‘이렇게 해석을 해버리니 와닿지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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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본론으로 다시 돌아와서, 강사님은 최대하 이해를 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가르쳐주셨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another가  an+other라는 것. 그리고 have a reservation(의구심을 갖다)와 made a reservation(예약을 하다)는 본인이 실제 시험장에서 처음 본 구문이라서 틀렸다는 것.

 

그렇게 첫 번째 토익 시험을 치렀다. 600점대가 나왔다. 환급 기준에 많이 부족했다. 그래도 시험의 감을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기적적으로 2번째 시험에서 점수가 800점이 나왔다. 내가 죽어라 공부를... 하지는 않았지만, 그때 토익 시험 유형이 급격하게 바뀌었다. 파트 5의 문제 숫자가 줄고, 파트 6,7,8의 유형도 메신저 등 현재에서 사용할 만한 형식이 많이 나왔다.

 

나의 최대 약점이었던 문법이 줄어들고, 강점인 독해가 익숙한 형태로 나온다? 그럼 말 다했지. 당당히 등록비의 절반을 환급받았다. 이걸로 영어와의 악연이 끝나면 좋았겠지만, 리딩과 리스닝 점수 외에도 스피킹 점수도 냈어야 했다. 토익스피킹 또는 오픽 점수가 또 필요했다. 자유로운 답변이 가능하다는 오픽에 도전했다. 등급은 딱 IL이상만 나오면 되었다.

 

읽기&듣기보다 말하기&쓰기가 더 어렵다. 한국형 영어교육에 익숙해진 나에게는. 오픽은 별도 수업을 듣지 않았다. 무슨 생각에 자신감이었는지 모르겠지만, 토익공부하던 감을 가지고 그대로 정말 최소한의 독학을 하고 시험을 쳤다. 오픽은 시험 당일날 시험장으로 향했다. 시험장은 매우 작았다. 앞 타임 시험을 보고 다음 시험 타이밍을 기다렸다. 시험장안은 예전 고등학교 어학실처럼 좁은 칸막이책상에 컴퓨터와 헤드셋이 놓여있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시험문제는 ‘친구들과 비디오를 같이 보려는 상황에서, 기계가 고장이 난 상황‘이 주어졌다. (물론 영어로) 뭔가 더듬더듬 대답을 했었을 것이다. 그러니 한 번에 IL등급을 받았지.

 

파파고, 구글번역이 지금쯤이면 완벽한 영어 번역기를 내주기를 기대하면서, 사회복지를 하는데 영어가 많이 쓰이지 않으니, 이런 핑계를 대면서 피했던 영어 시험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그때 이후로 영어는 쳐다도 안 보다가, 최근에 급하게 다시 영어성적이 필요해서 1주일만 공부해서 시험을 쳤었다. LC는 시간이 없어서 공부하지 않고 RC만 공부했는데, 웬걸 LC에서 400점이 나오고, RC는 265점..

 

정말 영어는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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