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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활때 그리 많은 대외활동을 하지 못했다. 배드민턴 동아리 활동도 2년정도 했고, 국립민속박물관 봉사활동도 절반정도 밖에 못했다. 그럼에도 내가 유일하게 장기간이면서 끝까지 완료한 대외활동이 엔비디아 비주얼서포터즈였다.

 

이 활동도 큐레이터 카페에서 공고를 확인했다. 그때는 시각장애인(아동)의 문화활동이라니. 구체적으로는 맹학교 내의 미술보조교사 활동. 이건 내가 무조건해야하는 활동이었다. 그리고 엔비디아라는 국제적인 기업의 대외활동이라니. 나도 이력서에 한 줄은 추가해야하지 않겠는가.

 

엔비디아 비주얼서포터즈 모집 포스터

 

역시 대기업의 대외활동이다보니 경쟁률이 만만치 않았다. 면접까지 있었다. 다대다면접이었고 엔비디아 코리아 서울 사무실에서 진행되었다. 봉은사역의 무역타워안에는 그 면접 때문에 처음 들어가봤다. 안에 들어가보니 면접을 보기 위한 대학생들이 많았다. 내 이름이 적힌 명찰을 가슴팍에 꽂고 면접을 기다렸다. 이윽고 면접장 안으로 들어갔다. 나를 포함해서 4명이 면접조였다. 자기소개를 시작으로 왜 이 대외활동에 지원하였는지 같은 질문이 이어졌다.

 

면접 당시의 기억은 거의 나지 않는다.(시간이 얼마나 많이 지났는데.) 어찌어찌 면접을 끝내고 결과를 기다렸다. 그리고 당당히 합격! 합격자들과 함께 1박2일간의 워크샵이 기다리고 있었다. 장소는 바닷가 근처 어딘가. 숙소도 근사하고 식사도 뷔페였다. 역시 대기업이다며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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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합격자의 수는 약 20명정도였는데, 남자가 나를 포함해 딱 2명 뿐이었다. 사회복지학과 성비가 1대1이었는데도, 이렇게 여자가 많은 무리는 처음이었다. 당시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 강했던 터라, 여자 합격자들끼리 친해지고 할때도 나+다른 남자 합격자는 초반에 어울리기 힘들었다. 말 그대로 ‘기가 빨렸다.’

 

워크샵 프로그램 중에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안경 만들기‘도 있었다. 진짜 보이는 안경을 만드는 건 아니고, 각종 재료를 활용해서 상상해서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진 촬영. 각자 물감을 손바닥에 묻혀서 현수막에 찍고, 그것을 들고 단체 사진을 촬영했다. 

 

이렇게 간단한 워크샵을 마치고, 3월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https://litt.ly/locomango

 

F2F캠페인부터 기업사회공헌까지

작은 비영리단체에서 대형 비영리단체까지 모금을 하고 있습니다.

litt.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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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03 - [사회복지에서 살아남기(Survivng the Social Sector)] - [Chapter 1. 사회복지학과에서 살아남기] 사회복지학과를 선택하다.

 

[Chapter 1. 사회복지학과에서 살아남기] 사회복지학과를 선택하다.

사회복지계열에서 일한 지 거진 7년이 되어간다니, 정말 믿기지 않는다. 대학교 시절까지 합치면 11년이 넘는 시간을 이 분야에 바쳤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나는 왜 다른 길로 빠지지 않

npo-archiving.tistory.com

 

 

 

고등학교 때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대학교에서도 그 열정을 이어가고자 했다. 하지만, 그렇게 기회를 엿보다가 어느덧 군대에 입대하게 되었다. 상병쯤 되니, 시간적 여유도 생기고, 제대 이후의 학교 생활을 준비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국사학과 전과 또는 복수전공을 준비하기로 마음먹고, 어머니께 한국사자격증 수험서를 부탁했다.

 

군대에서는 공부할 시간이 많지 않다. 주말과 휴일에도 일광소독, 축구, 경비근무, 급식지원, 5대기 근무 등 '군기' 유지를 위한 다양한 업무가 있다. 그래서 나도 어느 정도 짬이 되는 상병이 되어서야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다. 공부도 주말과 연휴 외에도, 야간연등이라고 해서 평일 취침시간 이후에 공부 등 자기 계발을 위한 시간을 허락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 시간을 활용해서 공부를 계속했다.

 

그렇게 무사히 전역을 하고, 머릿속에 든 게 잊히기 전에 바로 시험을 치뤘다. 그 결과는 아슬아슬하게 턱걸이로 1급 취득.

 

물론 자격증을 취득했다고 해서 전과나 복수전공이 바로 되는 것은 아니다. 전과 같은 경우는 성적을 봤던 기억이 있었고, 3학기 동안 들었던 사회복지 전공이 아까워서 복수전공을 선택했다. 복수전공은 성적을 크게 보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렇게 사회복지학과와 국사학과 복수전공 인생이 시작되었다. 보통은 연계 전공으로 복수전공을 해,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키지만, 사회복지학과와 국사학과는 접점이 없다. 사회과학과 인문학으로 건물도 완전히 다르고, 이쪽 전공지식을 다른 쪽 전공 지식으로 활용할 건더기도 없었다. 그때 당시만 해도 나는 큐레이터(학예사)로 진로를 잡았던 터라, 사회복지전공은 최소한으로 집중했었다. 추후 별도 토픽으로 다루겠지만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국 학예사와 관심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이틀간 교육이 있었는데, 그것을 들으러 가느라고 사회복지 전공 수업 출석을 2번 빠지기도 했다.

 

그렇게 어느덧 3학년이 지나고 4학년으로 올라갈 때 쯤, 고민이 찾아왔다.

 

사회복지 전공을 살릴 것인가 VS 국사학과 전공을 살릴 것인가.

 

 

사회복지전공을 살린다면 사회복지사 또는 사회복지공무원 진로로 갈 확률이 높았고, 국사학과 전공을 살리면 학예사 루트를 타기 위해 대학원을 진학할 확률이 높았다. 2개를 복수전공을 한 나로서는 이 둘을 합친 진로를 도저히 생각해내지 못했다. 그래서 국사학과 전공을 살려서 취업을 준비해 보자 하고, 준학예사 시험을 준비했다. (이 내용은 나중에 한번 다루겠다.)

 

그러던 와중에 나의 고정관념을 바꾼 하나의 사건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국립민속박물관 교육프로그램 봉사활동’이었다. 도대체 어떤 주제였길래 사회복지와 국사학을 섞을 묘수를 발견할 수 있었을까.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 중에는 장애인을 위한 프로그램도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사회복지와 국사학의 접점을 찾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국립민속박물관 2013 창의 인성 교육을 위한 박물관교육 교수 학습과정안 중 일부
당시에 봉사자로 참여했던, 국립민속박물관 2013 창의 인성 교육을 위한 박물관교육 교수 학습과정안 중 일부

 

이렇게 나의 대학 생활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되었지만,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할 있었다. 때로는 고민과 어려움이 있었지만, 모든 경험이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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