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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과정만큼 중요한 과정이 사진촬영 커리큘럼이었다. 이전 글과 마찬가지로 약간이라도 보이는 학생들도 있으므로 혼자서 사진촬영도 가능하다. 물론 옆에는 서포터즈들이 보조하지만. 카메라 조작법 교육을 시작으로 친구 사진, 학교 사진, 풍경 사진으로 점점 확대되어갔다. 여기서 나도 반셔터라는 걸 처음 알았다.

디카로 사진을 찍는 시각장애 학생들

 

손으로 재료와 겉모습을 만질 수 있는 공작, 종이 위를 손가락으로 따라갈 수 있는 회화와는 다르게, 사진을 손만으로 무언가 하기 많이 어려운 작업이다. 우선 카메라의 접안 부분에 학생과 서포터즈가 동시에 눈을 대고 찍을 수 없다. 그래서 무엇을 대상으로 잡고, 초점을 제대로 잡는지 알기 어렵다. 디지털카메라의 화면을 보거나, 촬영하고 난 사진을 같이 보는 식이었다. 작은 화면이다 보니 손가락으로

 

’ 이 부분에 초점이 나갔고, 대상으로 하는 책상은 여기에 있어.‘

 

작은 화면을 손가락으로 같이 찍어주더라도 그건 도화지와 달리 매번 구도는 달라졌다. 그럼에도 학생들은 사진촬영에 매우 즐거워했다. 친구들을 모델로 사진을 찍을 때도 단순한 증명사진이 아니라, 가발을 쓰기도 했다. 학교를 주제로 사진을 찍을 때는 도자기 가마가 있는 학교 지하부터 곳곳을 돌아다녔다. 풍경사진을 찍을 때는 학교 인근의 산에 오르면서 산의 풍경을 찍었다. 

 

디카로 사진을 찍는 시각장애학생들

사진을 흔히 ’ 찰나의 예술‘이라고 한다. 일상의 흔히 지나가는 것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진짜 찰나의 순간을 고정시킨다. 같은 장면과 모델을 보고 누군가는 ’ 햇빛을 가득 받은 모습을‘, 또 누군가는 ’ 석양빛을 받으며 그늘진 모습을‘ 찍고 싶을 수 있다. 필름카메라의 느낌을 좋아하는 사람, 전문가의 후보정을 거친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 등 취향은 다양하다. 이처럼 사진에는 정답이 없다. 흔들리고, 초점이 나간 사진마저도 사진작가나 보는 사람에게는 울림이 있을 수 있다. 

 

엔비디아 서포터즈를 하면서 만났던 맹학교 학생들의 사진과 미술작품에도 정답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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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 서포터즈 활동이 끝날 때쯤, 학생들의 작품을 모아 전시회를 열었다.

 

시각장애학생 미술작품 전시회 배너

 

시각장애 학생의 미술작품들

 

시각장애 학생의 미술작품들
시각장애 학생의 미술작품들

 

전시회는 문맥을 만드는 활동이다. 서로 관련이 없는(혹은 부족한) 작품과 콘텐츠를 하나의 주제로 묶어서, 하나의 공간에 전시한다. 소설의 기승전결을 따라 읽도록 작가가 의도하는 것처럼, 큐레이터는 관람객의 동선, 작품의 배치 등을 통해 하나의 이야기를 만든다. 맹학교 학생들의 전시회도 모르는 사람이 보면 실패한, 망친 작품이겠지만 전시장 안에서 만큼은 빠져서는 안 되는 중요한 요소이다. 맹학교의 아이들도 작품을 기획하고, 만들고, 전시하면서 스스로를 중요한 존재임을 인식한다. 

 

그걸 보는 나도 인간에게, 아이들에게,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문화활동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기존의 문화와 관련된 지원은 ‘문화 바우처’, ‘티켓 할인’ 등 ‘문화 소비’에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이는 반쪽만 지원하는 사업이고 문화사업의 반대편에 있는 ‘문화 생산’에 대한 지원도 더 많아져야 한다고 느꼈다. 

 

내가 만든 이론이지만 문화 산업은 ‘문화 생산자’와 ‘문화 소비자’의 파이에 따라 결정되고, 소외되고 있는 장애인들을 ‘문화 소비’ 시장에 참여하게만 하는 복지 제도에서 벗어나, ‘문화 생산‘시장에도 참여할 수 있는 제도를 확충하여 ’ 문화 산업‘ 시장 전체가 커질 수 있는 선순환을 만든다. 즉 ‘문화생산자’의 파이에도 장애인들이 쉽게 들어온다면, 대한민국의 문화산업 전체가 커질 수 있을 것이다. 

 

엔비디아 비주얼 서포터스가 나에게 남긴 것은 ‘처음으로 끝까지 완주한 대외활동’과 ‘남은 대학생활 동안 나는 어떤 사회복지를 해야 하는가.’라는 고민을 끝낸 아주 중요한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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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포터즈의 메일 활동 장소는 서울에 위치한 맹학교였다. 맹학교에서 진행하는 미술수업의 보조교사로 활동했다. 맹학교의 특징상 회화보다는 촉각을 필요로 하는 만들기 수업도 꽤 있었고, 특히나 사진 수업도 있었다.

 

그리고 많은 비장애인, 그리고 다른 유형의 장애인들도 잘 모르는 분들이 많다. 

 

‘어떻게 앞이 안보이는데 미술을 할 수 있느냐.’


흔히 생각할 때 시각장애인은 완전히 앞을 못본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아무래도 대중매체에서 시각장애인을 그렇게 표현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도 있으리라.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앞을 아예 보지 못함’ 유형은 전맹이라고 해서 시각장애 스펙트럼의 일부분이다. 희미하게 형체정도는 구분할 수 있는 장애스펙트럼도 있다.

 

장애등급상    

1급 : 좋은 눈의 시력이 0.02이하인 사람
2급 : 좋은 눈의 시력이 0.04이하인 사람
3급 1호 : 좋은 눈의 시력이 0.06이하인 사람
3급 2호 : 두 눈의 시야가 각각 모든 방향에서 5도 이하로 남은 사람
4급 1호 : 좋은 눈의 시력이 0.1이하인 사람

 

이렇게 시각장애로 판정된다.

 

두번째 오해는 ‘색을 인식할 수 있는가’

 

첫번째 오해로 인해 자연스레 드는 추가 의문이다. 앞서 말했다시피 희미하게나마 보이는 장애수준도 있을 뿐더러, 선천 보다는 후천적으로 시각장애 판정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앞이 보이던 시절이 있기 때문에 색에 대한 인지는 충분히 가능하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와서, 맹학교 미술수업에는 초등학생의 학생들에게 1대1로 매칭이 되어 수업을 보조했다. 학생들의 수업 열정은 매우 높았다. 미술 선생님의 질문에도 너도나도 손을 들고 대답했고, 자신이 만든 작품을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사진 촬영은 학교 내와 학교 인근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촬영을 했다. 서포터즈는 이동을 보조하교, 촬영된 사진을 말로 묘사하는 것만 도와줄 뿐, 구도를 잡고 촬영하는 것은 온전히 학생들의 몫이었다.

디지털카메라를 만지는 시각장애아동
카메라 액정화면을 가리키면서 원하는 구도대로 찍혔는지 확인해준다.

 

운동장에서 사진을 찍는 시각장애아동과 서포터즈
열정적인 사진작가와 모델들

서포터즈 활동은 약 1년간 진행되었는데, 내가 직접 수업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해볼 수 있는 기회도 가졌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주제는 ‘탈 만들기’. 전통탈을 직접 만지고 써보면서, 다양한 탈의 역할을 이해하고 나만의 탈을 만들어 보고자 했다.

 

그래서 직접 인사동에 가서 전통탈을 하나 샀다. 

 

노장탈 실물

 

흔히 생각하는 안동 하회탈 대신에, 어떤 탈이 괜찮을까 하다 눈에 띈 탈이 봉산탈춤에서 승려 역할의 ‘노장탈’이었다. 흑과 백으로 색 대비가 크고, 다른 장식 없이 이목구비가 뚜렷했다. (그리고 나중에 이 탈은 유럽여행 당시 베네치아의 가면 대신으로도 사용했다.) 학생들은 탈을 직접 만져보고 써보면서 즐거워했다. 서포터즈들은 옆에서 손으로 지나가는 부분을 말로 묘사해주었다. 

 

‘입술이 붉은색이고, 턱 끝까지 찢어져있네.‘
’지금 만지는 곳은 눈썹이 있는 부분인데, 검정, 빨강, 흰색이 번갈아 칠해져있어‘
’얼굴 표면에는 하얀색 점이 많이 박혀있어‘

 

여러번 걸쳐 탈을 만져보고, 그 후에는 학생들이 직접 탈을 만들어보았다.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빈 종이탈을 하나씩 나누어주고, 원하는대로 꾸미게 했다.

 

탈과 대본
직접 인사동에 가서 사온 탈과 대본

 

시각장애아동들이 만드는 종이탈시각장애아동들이 만드는 종이탈아이들이 직접 만든 종이탈
 
 
아이들이 만든 작품들

학생들은 종이탈을 만져가면서 눈 주변에는 이 색깔, 볼에는 이 색깔을 칠하겠다며 구체적으로 색을 말했다. 그러면 옆에 있는 서포터즈들이 색칠도구(크레파스, 색연필, 싸인펜 등)에서 알맞는 색을 찾아서 건네 주었다. 역시나 아이들이 즐거워하면서 종이탈을 꾸미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벅차올랐다. 실습 때도 느꼈던 그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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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활때 그리 많은 대외활동을 하지 못했다. 배드민턴 동아리 활동도 2년정도 했고, 국립민속박물관 봉사활동도 절반정도 밖에 못했다. 그럼에도 내가 유일하게 장기간이면서 끝까지 완료한 대외활동이 엔비디아 비주얼서포터즈였다.

 

이 활동도 큐레이터 카페에서 공고를 확인했다. 그때는 시각장애인(아동)의 문화활동이라니. 구체적으로는 맹학교 내의 미술보조교사 활동. 이건 내가 무조건해야하는 활동이었다. 그리고 엔비디아라는 국제적인 기업의 대외활동이라니. 나도 이력서에 한 줄은 추가해야하지 않겠는가.

 

엔비디아 비주얼서포터즈 모집 포스터

 

역시 대기업의 대외활동이다보니 경쟁률이 만만치 않았다. 면접까지 있었다. 다대다면접이었고 엔비디아 코리아 서울 사무실에서 진행되었다. 봉은사역의 무역타워안에는 그 면접 때문에 처음 들어가봤다. 안에 들어가보니 면접을 보기 위한 대학생들이 많았다. 내 이름이 적힌 명찰을 가슴팍에 꽂고 면접을 기다렸다. 이윽고 면접장 안으로 들어갔다. 나를 포함해서 4명이 면접조였다. 자기소개를 시작으로 왜 이 대외활동에 지원하였는지 같은 질문이 이어졌다.

 

면접 당시의 기억은 거의 나지 않는다.(시간이 얼마나 많이 지났는데.) 어찌어찌 면접을 끝내고 결과를 기다렸다. 그리고 당당히 합격! 합격자들과 함께 1박2일간의 워크샵이 기다리고 있었다. 장소는 바닷가 근처 어딘가. 숙소도 근사하고 식사도 뷔페였다. 역시 대기업이다며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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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합격자의 수는 약 20명정도였는데, 남자가 나를 포함해 딱 2명 뿐이었다. 사회복지학과 성비가 1대1이었는데도, 이렇게 여자가 많은 무리는 처음이었다. 당시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 강했던 터라, 여자 합격자들끼리 친해지고 할때도 나+다른 남자 합격자는 초반에 어울리기 힘들었다. 말 그대로 ‘기가 빨렸다.’

 

워크샵 프로그램 중에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안경 만들기‘도 있었다. 진짜 보이는 안경을 만드는 건 아니고, 각종 재료를 활용해서 상상해서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진 촬영. 각자 물감을 손바닥에 묻혀서 현수막에 찍고, 그것을 들고 단체 사진을 촬영했다. 

 

이렇게 간단한 워크샵을 마치고, 3월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https://litt.ly/locoma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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