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만에 다시 돌아온 비영리 도서 후기다. 매주 챙겨보던 뉴스레터에서 오랜만에 책 홍보 글이 떠 있었는데, 제목이 너무나도 적나라하고 정직해서 도저히 안 누를 수가 없었다. 바로 『조직의 역동으로 성공하는 고액 모금』.
모금 일을 하고 있는 내가 이 제목을 보고 안 살 수가 있을 리 만무했다. 그래서 바로 질러버렸고, 오는 동안 쌓아둔 책이 있어 일주일 뒤에야 읽기 시작했다.
출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쑥쑥쑥 읽다 보니 단체에서 써먹을 만한 아이디어도 떠올랐고, 자연스럽게 우리 단체가 지금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가 비교되었다. 그래서 이번 후기에서는 책 전체를 정리하기보다, 읽으면서 지금 내가 몸담고 있는 단체의 현실과 정면으로 부딪힌 부분 위주로만 풀어보려 한다.
1. 우리는 아직도 “charity” 단계에 머물러 있다

책 본문에는 우리가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닌, 점점 익숙해지고 있는 ‘필란트로피(philanthropy)’ 라는 용어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이전에는 ‘charity’ 라는 표현, 즉 동정의 정이 짙은 단어로 우리의 기부·모금 문화를 설명해 왔지만, 지금은 필란트로피 — 동정을 넘어선 임팩트 중심의 공익 활동 — 으로 그 해석이 옮겨가고 있다는 얘기다.
물론 이상(理想)은 늘 필란트로피다. 사회적 변혁과 임팩트라는 공익적 목적을 위해 자선 활동을 펼치고 싶은 마음은 항상 거기에 있다. 하지만 솔직히, 우리 단체의 지금 상황을 들여다보면 문제라기보다 초점이 아직 'charity’에 머물러 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책 본문에서 두 개념은 다음과 같이 대비된다.
| 돕는 대상 | 특정됨 | 불특정됨 |
| 활동 특성 | 빈자를 위한 부자의 자선활동 | 불특정한 대상을 위한 공익활동 |
| 전달 방향 | (도움) 일방적 | (나눔) 일방적·쌍방적 |
| 실천 개념 | 고통을 완화하는 적선 및 자선 | 삶을 개선하는 전략, 구조 변화 |
| 사회적 기능 | 산업화의 사각지대 완충 기능 | 사회공동체 유지, 공익 증진 |
여기서 핵심은 ‘실천 개념’ 이다. 필란트로피의 핵심은 임팩트, 즉 사회적 변화를 얼마나 만들어냈느냐 에 목적이 있고, charity는 얼마나 불쌍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의 수를 줄였느냐, 수요 대비 얼마나 많은 후원금을 모집해 분배했느냐 에 중심이 있다.
그리고 솔직히 지금 우리 단체에 내려오는 목표도 후원금 기준이다. 얼마나 많은 돈을 모아서 대상자에게 다시 분배했느냐가 개인의 직무 평가, 기관 평가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그러면 당연히 이런 의문이 따라붙는다.
“목표 후원금은 채우지 못했지만 어마어마한 임팩트를 낸 경우는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목표는 미달이었지만 사회적 변화를 더 크게 일으켰다면?”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우리 단체의 목적과 목표는 여전히 후원금 기준이다. 다른 기관, 다른 NGO보다 얼마나 더 많은 후원금을 모았느냐를 기준으로 평가가 이루어지다 보니, 그저 쉽게 처리할 수 있는 사업 위주로만 후원금을 제안하고 집행하려는 경향을 지울 수 없다.
2. “중고액 후원자를 관리해서 초고액으로” — 우리의 오래된 환상


우리 단체에는 후원 금액에 따라 다양한 후원자 모임(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소액 후원자 모임, 월 10만 원 이상 정기 후원자 모임, 초고액 후원자 모임, 그리고 유산·재산 기부자 모임까지. 지금까지 여러 후원자를 만나고 여러 지역본부를 돌면서 늘 되풀이됐던 패러다임이 있다.
“중고액 후원자를 꾸준히 관리해서 초고액 후원자로 업그레이드시켜야 한다.”
하지만 책은 우리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소액기부자를 잘 관리하면 고액기부자가 된다’는 전제는 전략이 아니라 그냥 바람에 가깝다고 잘라 말한다. 일부 전환은 되겠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는 거다.
“고액기부자란 '성장한 기부자’라기보다 애초에 다른 의사결정 구조를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기부금액의 크기 문제가 아니라 기부 판단의 방식에 차이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즉, 초고액 후원자들은 처음부터 초고액 기부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지, 월 10만 원 후원을 하던 분이 어느 날 갑자기 월 166만 원을 내기 시작하는 케이스가 아니라는 얘기다.
그래서 다시 돌아보면, 우리 단체에서 흔히 쓰는 정의를 빌려 보면 이런 구조다.
- 중고액 후원자: 월 10만 원 이상의 정기 후원자 (보통 월급 3~400만 원 이상의 급여소득자나 안정적 사업자)
- 초고액 후원자: 1억 원 이상 납부 약정 또는 헌액 (5년 약정 시 연 2천만 원, 월 약 166만 원)
이 구조에서 월 10만 원 후원자가 월 166만 원 후원자로 도약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솔직히 높지 않다. 사회적·구조적 이동의 가능성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중고액 후원자를 꾸준히 관리해서 초고액으로 성장시키는 라포 전략은 사실상 사각지대를 파헤치는 노동이 될 가능성이 높다.
책의 주장대로라면, 차라리 “애초에 고액을 낼 수 있는 사람을 발굴하는 방식을 고액모금으로 정의내리는 일” 이 자연스러운 셈이다. 그렇다면 정말 초고액 후원을 할 수 있음에도 중고액 라인에서 머물고 있는 후원자들이 우리 사이에 분명히 있을 텐데, 이들을 일일이 수작업으로 발굴해내는 과정 이 모금 현장의 새로운 숙제가 되어야 한다.
3. 만능 플레이어와 윤리 사이 — 모금 직군의 역설
모금 직군은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갖고 사회복지 영역에서 일하지만, 실제 하는 일은 영업·마케팅에 훨씬 가깝다. 순수 모금만 담당하는 부서가 아니라면, 기업 사회공헌의 경우 사업 기획부터 대상자 발굴, 운영, 결과 보고까지 전부 직접 해야 하는 만능 플레이어, 어쩌면 잡부 가 되는 경우도 흔하다.
물론 모든 단체가 그렇지는 않다. 굿네이버스처럼 사회복지법인과 사단법인을 분리해서 사단법인에서 모금을 전담하는 경우도 있고, 의료재단이나 대학교처럼 모금 대상이 비교적 단순한 곳은 모금 직군이 후원자 관리에만 전념할 수 있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올라운드로 다 해야 하는 상황 이고, 이런 환경에서는 보상의 평가 기준이 무엇이어야 하는가 가 핵심 쟁점이 된다.
영리기업이었다면, 후원금을 따온 것에 대해 모금이 아니라 '실적’이라는 이름 아래 성과금 을 줄 수 있다. 영업·마케팅 과정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마찰 비용을 이 성과금이 한 번에 정산해버리는 셈이다.
문제는 비영리는 다르다는 거다. 윤리 규정상 후원금 실적에 연동해 성과금을 크게 주는 것은 윤리에 맞지 않다. 법이 막는 게 아니라 윤리가 막는 것이다. 후원금 실적을 위해 해서는 안 될 약속을 하게 되거나, 진심을 담아 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의욕 없이 후원자 개발로 흐를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위에서는 후원금 목표로 쪼고, 그에 걸맞은 대우·보상을 줄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경영진과 현장 모금 직군 사이의 마찰이 만만치 않다. 우리 단체도 마찬가지다. 후원금 목표가 크게 내려오고,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주려고 애쓰고 있지만 윤리 때문에 실적 연동 성과금을 풀 줄 수 없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내부의 불만은 상시 존재하고, 그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다양한 베네핏이 도입되고 있지만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다. 채용된 모금 직군의 성장 목표와 단체에서 내려오는 외부 목표가 전혀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4. 외부 보상에 의존하는 리더십의 한계 — 허즈버그가 우리에게 말하는 것
단체에서 원하는 외형상의 목표는, 겉으로 명분을 걸어 “대상자가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현장에 하달되는 목표는 “얼마 모금해 와라” 는 금액 기준이다. 현장의 입장에서는 100억을 모금해 와도 작년 대비 대상자의 삶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체감하기 어렵다.
사회복지 직군으로 입문해서 모금을 하는 대부분의 현장 전문가들은 대상자가 행복해지는 그 변화의 장면 자체를 보고 싶어서 이 일을 선택했다. 그 장면 하나하나에서 보람을 느끼지만, 업무는 후원금 목표를 채우기 위해 그 장면을 줄줄이 건너뛰도록 만든다. 한 명 한 명을 케어하면서 후원금을 채우는 건 구조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책은 이 지점에 대해 정확히 이렇게 짚는다.
“외적보상이나 내적보상 모두 재무적 보상이 아닌 비재무적 보상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 외적보상에 의존하는 이사회의 운용은 항상 한계를 내포한다. 기본값은 내적보상이 우선이어야 하며, 상황에 따라 외적보상이 가미되는 일이 현명하다.”
그리고 책은 허즈버그(Frederick Herzberg) 의 이론을 끌어와 한 발 더 나간다.
“외적보상으로 충족되어야 하는 만족도란 불충분할 때 불만이 형성되지만, 만족도를 향상시킨다고 해서 완벽한 만족감으로 수렴되는 것은 아니다.”
“내적보상이 작동하지 않아 몰입도가 저하되는 경우, 몰입도를 직접 끌어올리지 않고 만족도 향상을 통해 몰입도를 견인하려는 시도 역시 무의미하다.”
정리하면 이렇다. 외적 보상(성과금, 베네핏, 인센티브)만으로 모금 직군의 의욕을 끌어올리려는 시도 — 후원금을 더 모으게 하겠다는 시도조차 — 구조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것. 결국 지금 우리 단체가 후원금 목표를 채우라고 경영에서 압박하는 것(다른 단체를 이기기 위해서 목표를 채우라는 느낌으로 내려온다)은, 책의 표현대로 외적 보상의 향상으로 내적 몰입까지 끌어올리려는 시도이고, 허즈버그 이론에 따르면 이건 애초에 작동하지 않는 방식이다.
마지막으로, 나 자신에게도 같은 진단을 내려본다. 후원금 목표 채우라는 압박에 대해 나는 전혀 동기·목적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현장에서 “지금 당장 후원금이 추가로 필요하다”, “사업이 진행 중인데 신청이 폭주해서 더 모아야 한다” 는 구체적 상황을 들었을 때만 추가 모금 활동을 하겠다는 동기 부여가 생긴다. 즉, 임팩트의 필요가 선명하게 보일 때만 움직이는 거지, 숫자 목표가 보일 때 움직이는 게 아니다.
지금 내가 다니는 단체 — 그래서 부딪히는 것들 — 에 대해 1부에서는 여기까지 풀어봤다. 2부에서는 다른 부분으로도 책의 어떤 문장이 떠올랐는지 풀어보려 한다.
📌 2부에서 계속
AI는 당신을 대신할 수 없지만, 당신을 지치게 하는 단순 반복 업무는 대신해 줄 수 있습니다. 불필요한 마찰을 줄이고 다시 사회복지의 본질로 돌아가는 법, 3단계 고성능 프롬프트에 담았습니다.
🌿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에만 집중하세요]
https://smartstore.naver.com/summer_books/products/13617725978
[전자책] 사회복지 직무별 AI 프롬프트 모음집 사업계획서 제안서 작성 가이드북 : 여름북스
[여름북스] 직장인을 위한 경제·재테크 학습지. 적게 벌어도 흔들리지 않는 돈 감각을 나눕니다
smartstore.naver.com
'비영리 아카이빙(NPO-Archiving)'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기부 후기] 아 맞다. 여기 기부 했었지? <고향사랑기부제 광주 동구 ET야구단 감사편지> (0) | 2025.12.10 |
|---|---|
| [비영리 도서 후기] 임팩트 세대, 차세대 기부자들의 기부 혁명_ 1부와 2부 (1) | 2025.11.30 |
| [기부 후기] 국립중앙박물관회에서 보내온 첫 우편물 (0) | 2025.1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