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영리 아카이빙(NPO-Archiving)

[모금캠페인 외전] 3년간의 첫 모금을 마무리하며

로코망고 2025. 1. 4. 14:10
320x100
320x100

 

이 글은 필자 블로그에 업로드 된 글을 재업로드한 글입니다.(2021.01.11)

 

 

'인생의 길은 한 방향으로 난 기찻길이 아니라, 수많은 방향의 바퀴 자국이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 소설에서 본 내용이다.

2017년 7월 24일~2020년 12월 31일, 1257일.

나는 퇴사했다.(무작정 퇴사가 아닌 이직 성공으로 인한 퇴사이니 혹시라도 걱정은 접어두길)

첫 직장, 첫 업무, 첫 모금의 흔적을 되돌아보려 한다.


1. 나는 무엇을 했는가

1) 회사 업무

3개월의 수습과 막내 기간, 1년간의 둘째 생활, 2019년부터 3인 1팀의 선임.

a) 거리 캠페인

가장 메인이 되는 업무로서 가장 추운 1,2월, 가장 더운 7,8월을 제외하고 매일 나갔다. 사람이 많은 번화가, 지하철역, 병원이라면 달려갔다. 2,500번의 거절과 500명의 후원자를 개발했다. 낯가리고, 소심한 성격? 이 일을 하다 보니 그런 건 없다. 막내 때는 하루에 한 명 개발하기가 목표였다. 한 명이 개발되면 팀 실적의 3분의 1을 하기. 목표를 최소한 그리고 다양하게 잡으면서 멘털을 관리했다. 둘째 때는 캠페인에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았다. 디데일 달력, 개인 책자, 스티커판 등 내가 해보고 싶었던 캠페인을 진행해보았다. 선임이 되고서는 팀원들에게 내가 경험했던 캠페인의 노하우를 전수해줬다. 덕분에 논리 정연하게 말을 하는 스킬이 늘었다.

거리 캠페인

2017년 9월 3일 첫 캠페인

b) 사찰 캠페인

첫 직장은 사회복지법인이지만 약간의 종교색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사찰에서도 캠페인을 진행했다. 하지만 나는 종교색을 가진 모금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거리에서 비종교인을 대상으로 모금을 하면서, 종교색의 거부감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2019년이 돼서야 첫 사찰 캠페인에 참여했다. (당시 사찰 캠페인은 주말 법회에 기간에 주로 진행했기 때문에 지원자를 받았다.) 선임이 되고 기업 사회공헌에 관심이 생기면서 비슷한 사찰 캠페인 업무를 맡았다. 사찰 리스트업, 정보 리뉴얼, 섭외, 공문과 피드백 발송의 프로세스를 다시 정비했다. 2020년 코로나 때문에 모든 법회가 취소되는 바람에, 아쉽게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했다.

사찰에 보낸 감사편지

당시 사찰에 보낸 감사 편지

c) 콘텐츠 제작

캠페인은 말, 글, 시각정보가 조화롭게 어울려야 한다. 말로만 전하면 이해하기 어렵고, 글로만 읽히면 감정을 전달할 수 없고, 시각정보만 있으면 내용을 오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면 모금은 말을 잘하는 스킬뿐만 아니라 정보를 편집하는 스킬도 중요하다. 화려한 언변보다는 시각정보 제작에 강점을 가진 나는 콘텐츠 제작에 힘을 쏟았다. 책자, 피켓, 제안서, 굿즈 같은 형태에 따른 콘텐츠, 산하기관의 프로그램 별 안내책자 등 최대한 말을 덜 할 수 있는 방향을 추구했다. 포토샵을 할 줄 몰라 모든 콘텐츠 제작은 파워포인트로 만들었기에, ppt제작 스킬이 급 늘었다.

거리 캠페인 책자
거리캠페인 책자

생각보다 후원을 한 번도 안해본 시민분들이 많다

d) 프로그램 운영

모금 업무를 맡았지만 엄연히 나는 사회복지사다. (사회복지사 보수 교육도 받고, 연봉도 사회복지사 보수 체계를 따른다.) 당연히 대상자를 만나고 프로그램을 하는 기회도 있었다. 1년에 한 번뿐이었지만. 산하기관 대상자들과 함께 1박 2일로 여름캠프를 떠난다. 그리고 법인 직원들이 숙소 예약, 오락프로그램, 식사 등 캠프 전반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했다. 입사하고 3일 뒤에 바로 프로그램에 참여했을 때는 뭔지도 모르고 참여했다. 이거하라해서 이거 하고, 저거 하라 해서 저거 했다. 선임이 되고 나서는 간식 프로그램 업무를 담당했다. 간식 메뉴 선정, 주문, 재고관리, 푸드트럭 섭외까지. 여러 외식 업체와 컨택을 했었으나 여름 식중독 위험으로 전부 거절당하기도 했고, 간식을 만드는데 전기가 나가서 도구를 다 옮겨서 만들기도 했다. 사업계획에 이론만큼 실전의 경험이 중요함을 깨달았다.

사회공헌 제안 리스트

2019년도 당시 폭염으로 인한 식중독 위험으로 푸드트럭 형식의 사회공헌 제안이 많이 거절되었다

e) 기업 사회공헌 시도

온라인 모금을 제외하면 모든 모금은 대면 모금이다. 거리 캠페인은 거리를 지나다니는 시민의 얼굴을 보고, 기업 사회공헌은 담당자의 얼굴을 보고 한다. 선임이 되기 전부터 기업 사회공헌에 관심이 생겼다. 게임회사의 기업사회공헌팀과의 미팅을 할 기회를 얻었다. 사회공헌팀이 뉴스레터를 통해 연말에 구독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었다. 그래서 혹시 몰라 우리 법인의 사업을 설명해서 발송했다. 회사 내 사람이 아닌 외부 사람이 답변을 보낸 것이 신기했는지 먼저 연락이 왔었다. 그리고 미팅에 가서 하지 말란 짓을 다 했다. 지금도 후회한다. 아쉽게 그 이후 진척이 되지는 않았다. 그 후 다른 게임회사에도 제안서를 만들어서 보내보기도 했다. 당연히 잘 되지는 않았다. 덕분에 내가 가진 모금의 경험이 많이 편중되었다고 판단, 더 다양한 모금 경험을 쌓는 계기가 되었다.

f) 데이터베이스화 작업

내 MBTI는 INTJ다. 분석적이고 숫자를 좋아한다. 그리고 회사라면 데이터가 당연히 정리되어야 한다는 직업관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내가 겪은 거리 캠페인은 구전, 체감의 느낌이 강했다. 성과가 숫자(후원금)로 측정됨에도 통계를 내거나 분석할만한 툴이 마땅히 없었다. '현장의 피로도가 늘었다.'라는 주장을 뒷받침 할만한 합리적인 데이터가 필요했다. 그래서 입사 후부터 퇴사 직전까지 캠페인을 기록했다. (중간에 6개월 정도는 빈다.) 성별, 연령, 금액, 장소, 날씨 등을 기록하고 통계를 냈다. 시민을 멈추게 해서 설명을 듣고 개발까지 하는 확률, 연령과 성별에 따른 평균 금액 등의 통계를 냈다. 예를 들어 후원개발 확률은 평균 30%다. 그중 20대가 가장 많으며, 30대가 가장 적다. 전연령을 다 합쳐 후원 평균금액은 13,000원대이며, 40대 이상의 평균금액이 가장 높다. 이런 식으로 데이터와 통계를 활용하니 관리자나 상대방을 설득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데이터베이스를 위한 엑셀작업
캠페인 하면서 메모한 메모지

엑셀로 정리한 통계자료들 / 3년간 기록했던 메모지

g) 잠재 후원가족 개발

데이터베이스화 작업의 결과물을 바탕으로 나온 프로젝트가 '잠재 후원자 개발'프로젝트다. 후원개발률은 30%대로 큰 변화가 없으나, 전체적인 실적은 감소했다. 즉 캠페인 참여자의 수가 줄어들고 있음을 통계로 확인했다. 팀원들의 설명 능력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참여 환경에 문제가 있었다는 분석을 근거로 회사에 제안했다. 현장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을 재접 촉할 수 있는 채널이 있어야 한다. 두 번째 볼 때 좀 더 익숙해진다면 캠페인 참여율이 늘어날 것이라고. 물론 회의를 통해 첫 계획과는 노선이 달라지긴 했다. 하지만 내가 원했던 방향(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접촉하기)을 위해 서명을 받고 웰컴 웹진을 보내기로 가닥을 잡았다. 약 140여 명의 서명을 받았고, 1분이 정기후원에 참여했다. 더 많이 받았다면, 지금 같은 코로나 때 도움이 되었을 테지만.

온라인 모니터링단 가입서
서명양식

왼쪽 : 초기 아이디어 / 오른쪽 : 회의를 통해 변경된 서명양식

h) 신입직원 교육

선임이 되면 1개 팀을 운영하는 것 외에도 신입직원 교육에 직접 참여한다. 모금 명분 서교육과 어프로치 교육 2개를 맡았다. 내가 만든 교육이 아니라 인수인계받은 교육이기에 먼저 내 것으로 만들어야 했다. 내 것으로 만든 다음에는 현재에 맞게 조금씩 수정했다. 단순한 경험이나 사례 전달에 그치지 않고, 왜 그 방식을 사용했는지 이론적 배경이나 근거도 추가하고 싶었다. 당시 듣고 있던 캠페인 매니저 자격증 교육과 직원 복지였던 도서구입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모금 명분 서교육은 짧긴 했지만 직접 작성해보는 교육도 있어서 약간의 변형을 주기도 했다. 어프로치 교육도 이전 자료가 너무 단순해서 지금 하는 캠페인에 맞게 더 많은 자료들과 실습을 추가해봤다.

신입직원 교육자료

[무기가 되는 스토리-도널드 밀러 저]를 읽고 교육자료로 만든 것 중 일부


2) 사이드 프로젝트

입사 후 1년이 되면 1주년 기념이라고 축하를 받았다. 꽃다발과 표창을 받고 자리에 가서 생각해봤다. 그 1년 동안 영어공부를 했으면 영어를 마스터했고, 글을 썼으면 책 하나를 탈고했을 텐데. 남은 게 뭐지? 그래서 생각만 하고 시도하지 않았던 것들을 시도했다.

a) 브런치 글

처음은 소설을 써보고 싶었다. 단편소설을 쓰다가 잠정 중단했다. 다음에 도전했던 것이 업무 관련 글쓰기였다. 업무를 하면서 느낀 감정(특히 분노)을 해소하는데 글쓰기만 한 게 없었다. 부업에 관심을 가지면서 메모장에만 써놨던 글들을 브런치에 연재하기 시작했다. 처음 써놓은 10개의 글 정도만 올려보는 수준이었다. 쉬는 시간마다 아이패드로 글을 쓰고, 자료를 찾았다. 그러던 중 한 모금 관련 뉴스레터에 내 글이 올라가고 조회수가 급증한 것을 계기로 브런치 글에 더 진지하게 접근했다. 연재 형식으로 가급적 2주에 한 개씩 올려보려 했고, 단순 논리에서 최대한 많은 근거 사례들을 수집하려 했다. 브런치는 내가 모금가로서 직업관을 가질 수 있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https://brunch.co.kr/@ohsummer/2

b) 펀딩

펀딩에 참여만 해봤지 실제 펀딩을 열어보고 싶은 욕구는 항상 있었다. 그래서 나노 블록으로 리워드로 줄 수 있는 굿즈를 만들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직접 펀딩을 열고 운영해볼 수는 없었다. 캠페인 업무를 하기도 바빴으니까. 그러던 중 브런치 글을 보고 먼저 연락해온 분과 연이 닿아 펀딩 교육을 받을 기회를 얻었다. 퇴근 후 7시부터 3시간 정도 강남에서 교육을 받았고, 실제 펀딩 오픈까지 이어졌다. 펀딩을 오픈할 때 대부분 놓치는 요소, 어디에 어떻게 홍보할 것인가. 모금을 위한 좋은 글을 쓰는 것만큼 채널 확보와 채널에 어울리는 콘텐츠 제작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웠다.

https://brunch.co.kr/@ohsummer/33

c) 전자책

브런치의 글은 유튜브나 블로그와 다르게 직접적인 수익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직접 팔리는 글을 쓰고 싶었다. 글감을 무엇으로 할까 고민했다. 내가 가장 잘 쓸 수 있고, 구매자들을 자극할 만한 내용. 당시 신입들과 거리의 학생들이 많이 물어봤던 질문이 캠페인과 관련된 질문이었다. 이 질문을 토대로 전자책을 집필했다. 책의 내용을 쓰는 건 어렵지 않았다. 카테고리만 정하면 쓸 내용이 저절로 나왔다. 오히려 편집이 어려웠다. 전문 프로그램이 아닌 익숙한 한글 프로그램으로 초안을 만드니, 실제 출판하는 책과는 느낌이 달랐다. ebook 프로그램으로 편집하려다가 코딩을 해야 해서 포기했다. PDF 파일로 단순하게 만드는 걸로 방향을 틀었다. 만들어만 놓으면 당연히 팔릴리 없다는 걸 펀딩을 공부하면서 배웠다. 브런치 글을 쓸 때마다 판매 링크를 추가했다. 첫 판매의 흥분은 잊을 수 없다. 그리고 부담감을 느꼈다. 아메리카노 두 잔 정도의 가격이지만 분명 나의 지식을 구매하셨다. 지식에 대한 책임감을 느꼈다.

올해 총 4편을 팔았다. 수수료를 제하고 내 수중에 들어온 판매금은 32,000원. 순전히 나만의 지식을 가지고 번 수익이다. 그래서 계속해서 전자책을 쓰려고 한다. 새로운 내용. 새로운 플랫폼을 경험해보고 싶다.


p.s 왜 그동안 글을 안 썼나

퇴사 후 1주일간 나름대로 방탕하게 살려고 했다. 여행 대신(이 시국 때문에) 늦잠도 자고, 안 하던 게임도 하고, 배달음식도 시켜먹고. 그러나 이런 생활도 딱 1주일까지만. 1월 4일부터는 다시 일을 하던 패턴대로 생활하고 있다. 관련 직종으로 이직에 성공했지만, 발령일이 미정이라 감을 잃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업무 관련 책도 읽고, 브런치 글과 책도 쓰고, 가벼운 운동도 계속할 예정이다. 이렇게 글을 여유롭게 쓸 수 있는 시간이 앞으로 없을 수도 있다. 지금을 즐겨보자.

320x100